올해(2014년)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상은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Twenty Feet from Stardom, 모건 네빌 감독, 다큐멘터리, 미국, 2013년, 91분)에 돌아갔다. 영화의 주인공은 여성 백업 가수들이다. 이들은 소속사 없이 일을 하느라 개인적인 요청에 따라 코러스를 구성한다. 그러니 어찌 개성이 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스티비 원더, 티나 터너, 브루스 스프링스틴, 스팅, 마이클 잭슨, 레이 찰스, 엘튼 존, 믹 재거 등등 실력 있는 가수들이 단골로 찾는 가수들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증명된다.
영화에 많은 백업 가수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 다섯 여가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달린 러브, 메리 클레이턴, 리사 피셔, 타타 베가, 주디스 힐이다. 한결같이 대단한 가창력과 뛰어난 곡 해석력을 가졌지만 그들이 처한 현실은 처량할 뿐이다. 자신의 처지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독립 앨범을 내 보아도 이런저런 조건 때문에 실패하고 만다. 제작사를 잘못 만나거나 얼토당토않은 스캔들에 발목이 잡히기 때문이다. 한동안 방황 끝에 깨닫는 현실은 언제나 같다. 그들의 자리는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 뒤’라는 사실이다. 그중에서 달린 러브의 신세는 더욱 한심해 아예 청소부로 전업까지 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곡 A christma gift for you와 함께 진공청소기를 돌린다.
인생의 바닥까지 떨어진 느낌! 다섯 여가수의 독백에서 공통으로 들려오는 소리다. 영화에서는 여가수들의 탁 트인 노래들을 수시로 들려준다. 정말 잘 부르는 가수들이다. 아니 별다른 배경음악 없이 그저 이들의 백업 보이스만 들려주어도 영화의 음악 효과가 충분히 살아날 정도다. 하지만 감독이 우리에게 보여주려 하는 바는 그들의 노래 실력이 아니라 ‘모순 가득한 우리네 인생’이라 해야 옳다.
일단 백업 가수의 길에 접어들면 자기 음악을 할 수 없다. 오로지 스무 발자국 앞에서 조명을 받는 솔로 가수의 소리가 살아날 수 있도록 뒷받침만 잘해 주어야 한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처럼 인간적인 면을 갖춘 가수가 가끔씩 백업 가수를 앞으로 불러내 듀엣을 할 기회를 주지만 그야말로 가끔이다. 실력과는 무관한 출세, 잠시 머물렀다 곧 돌아가는 차가운 시선, 운이 따르지 않으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인생. 그 차가운 현실의 정 중앙에 백업 가수들이 서 있는 셈이다.
아카데미에서 이 영화에 상을 준 이유는 자명하다. 꾸밈없는 진솔한 삶을 이들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감독은 그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고 많은 인터뷰와 기록 화면들을 제시했다. 워낙 출중한 음악영화였고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해 지루한 줄 모르고 영화를 봤다. 처음부터 끝까지 화면에서 눈과 귀를 떼지 못했다고 하는 게 아마 바른 표현일 것이다.
보석 같은 영화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나와 같은 관객이 얼마나 있을까?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이 독립 극장에서 벗어나는 날이 과연 올까? 하느님은 이들의 눈물을 언제쯤 닦아 주실까? 온갖 의문을 간직한 채 백업 가수들의 합창이 오늘도 이어진다. 노래 제목은 소울 곡인 Lean on me(나에게 기대세요) 였다.
박태식 신부는 서강대 영문과와 종교학과 대학원을 졸업 후 독일 괴팅엔대에서 신학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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