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 넘는, 살아온 날의 절반도 넘는 그 긴 시간이 박필여(크리스티나·56·춘천교구 기린본당)씨에게는 인고의 세월이었다. 그 세월을 버텨온 것은 사랑과 연민, 그리고 신앙의 힘이었다.
어려서 한 결혼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남편인 이시호(요셉·68)씨가 쓰러진 것이 31년 전, 남편이 37세, 띠동갑인 박씨가 겨우 25살, 외동딸은 5살 때였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사람들은 “못 산다”고 말했다. 시체 같던 남편, 입술에 물을 적셔주고, 과일을 쪄서 국물을 내 병아리 오줌 만큼씩 목으로 넘기기를 100일, 희미하게 남편은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후유증은 감당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치매와 우울증, 정신분열은 망가진 몸에 정신까지 파탄을 냈다. 생리현상도 못 가리고, 가누지도 못하는 몸으로 문밖으로 나서 쓰러지고 부딪혀 상처를 입는다. 오물로 더러워진 옷을, 한 손으로 부축하고 다른 손으로 간신히 갈아입히면 어느새 벗었던 옷을 다시 집어드는 바람에 아예 저만치로 옷을 던져버린다.
증상은 조금 나았다가 악화되기를 반복하는데, 점점 심해진다. 매년 한 두 번은 의례적으로 병원에 입원하는데 이번에는 최소 6개월이다. 정신이 악화된 탓에 춘천성심병원 정신병동에 입원한 것이 며칠 전의 일이다. 8월초 낙상해 코뼈가 부러졌는데 제대로 치료도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아주 가끔, 정신이 돌아오면 남편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당신에게는 정말 미안해”라고 말한다. 그 마음을 아는 박씨는 그저 삐죽 웃음 한 번 짓고 만다.
긴 세월 병간호에 박씨의 몸과 마음도 많이 망가졌다. 신경성 질환으로, 산들바람조차 쐬지 못해 한여름에도 두툼한 옷을 입는다. 폐쇄 공포증으로 화장실도 편하게 못 다닌다. 다섯 살 때 아빠가 쓰러진 딸 이세련(루시아)씨는 결혼 후에도 부모를 돌보려 가까운 곳에 집을 얻어 산다. 착한 사위는 지난 추석 명절도 장인과 장모를 돌보느라 집에도 안 다녀왔다.
긴 병에 효자 없다지만, 박씨와 딸, 사위가 완치의 희망도 없는 이씨를 돌보는 손길은 여전하다. 별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야 짐작할 수 있다.
“무슨 생각을 안 했겠습니까…. 남들은 쉽게 말하죠. 할만큼 했으니 그만 떠나라는 이도 있었고…. 약 먹고 다 같이 세상을 떠날 생각도 했었죠. 하지만 누워 있는 저 사람이 너무나 불쌍했어요.”
완전히 지칠 무렵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다. 신앙은 지친 몸과 마음을 버티게 해주었다. 조금이라도 건강에 보탬이 될까 해서 고향인 논산을 떠나 공기 좋은 강원도 인제로 옮겼다.
얼마 전에 임지를 옮긴, 본당 주임이었던 김동훈 신부는 “본당 신부로서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기도하고 주일미사를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분들”이라고 말했다. 얼마 안 되는 정부 지원금으로 교무금을 내고 꽃 봉헌도 하고 후원도 한다. 오죽하면 주임신부가 교무금을 반으로 줄이라고 권고까지 했다.
일년 100만 원으로 세든 허물어져가는 산골 집, 이웃집 농사일 거들며 먹는 거야 해결한다지만 문제는 간병비다. 병원비 자체는 얼마 안 들지만, 왔다갔다 경비와 간병비, 식대가 매월 300만 원은 족히 든다. 수십년 반복된 치료비와 경비 지출로 더 이상 누구한테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
남은 바람이야 무에 있을까. 그저 대소변 가리고 밤에 잠이나 안 깨고 자고, 병원 신세나 안 지면 좋겠는데, 그것조차 그리도 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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