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르주 루오
매우 신심 깊은 가톨릭 신자였던 조르주 루오는 다양한 주제의 종교화를 많이 남겼다. 로트렉이나 드가처럼 루오 역시 사회의 차가운 단면을 그림에 담았고, 곡예사나 창부와 같은 당시 사회의 아웃사이더들, 그리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작품에 등장시켰지만, 루오의 독특한 점은 그들을 사랑의 눈으로 대했다는 것이며, 인간사회의 비참함이나 슬픔을 근본적인 인간애로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 교외의 그리스도(Le Christ dans la banlieue), 1920~1924, 도쿄 브릿지스톤 미술관.
‘교외의 그리스도’(Le Christ dans la banlieue)는 루오가 오랜 시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작품으로, 1920년에 그리기 시작해 1924년에 완성했다. 적막감이 감도는 거리에는 몇 채의 우중충한 집이 늘어서 있는데, 창문에는 모두 불이 꺼져 있어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것만 같은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풍긴다. 어두운 밤하늘에 둥그렇게 떠있는 달은 멀리서부터 뻗어 내려온 길을 비추며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화면의 아랫부분에는 따뜻하고 안락한 집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밤거리를 걷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루오가 보여주는 거리 풍경에는 휘황찬란한 빛도 북적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개발과 부의 축적에서 밀려난 사람들, 그리고 세속적 허영과 헛된 즐거움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사는 외곽지대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다가간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그리스도는 어둠 한가운데의 빛으로서 사람들 곁을 따라가고 있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찾아 사회의 구석진 곳, 변두리로 용기 있게 나가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어쩌면 루오는 이미 한 세기 전에 그림으로 실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루오는 1930년대 후반부터 많은 풍경화를 그렸다. 스스로 “나는 신비가입니다”라고 고백한 그는, 인상주의의 표피적 아름다움을 벗어난 심오한 종교적 감성을 풍경화에 담았다. 1936년에 제작한 ‘그리스도와 가난한 여인’(Christ et pauvresse)은 ‘교외의 그리스도’에 비해 전체적으로 밝은 색조를 사용하였고, 자유로운 필치와 굵은 선, 충만한 구성 등 새로운 차원의 종교화를 제시한다.
왈터 닉이 “루오의 풍경화가 상징하는 진리는 인간이 쾌락과 사치와 행복이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신비 없이는 결코 살 수 없다는 것이다”라고 올바르게 지적하였듯, 이제 그의 작품에서는 인간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주제가 되며, 보이지 않는 것에 근거하는 영원의 세계가 표출된다.
조수정씨는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