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3차 임시총회가 ‘가정사목과 복음화’를 주제로 10월 5일 개막된다. 미리 발표된 총회 의안집(<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제50호)을 읽어보니 현대의 가정에 대한 교회의 근심이 가득하다. 가정과 관련한 현상들 중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혼인과 출산의 감소다. 젊은 세대가 가정을 거부한다거나 가정의 재생산이 중단된다는 징조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원인으로 먼저 지목되는 ‘3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 논란은 청년들의 재정적 어려움에 주목한다. 물론 궁핍에 대한 공포, 결혼은 자격과 환경을 갖춰놓고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중요한 변수지만, 물질적 결핍만 탓할 문제는 아니지 싶다. 혼인을 결단할 만큼 상대에게 자신을 개방하고 깊이 교감하기가 어려워지는 세태, 타인에 대한 헌신을 손해로 여기는 정서도 한몫하지 않을까.
혼인이 복잡하고 부담스러운 일이 된 시대라 해도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고, 사랑을 다루는 예술작품은 늘 차고 넘친다. 다만 작품에 묘사된 혼인의 양상이 시대에 따라 다를 뿐이다.
TV의 경우 결혼을 묘사하는 최근작에서는 우연이나 오래된 인연을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1990년대 이래 트렌디 드라마들은 청년 초기(20대) 주인공들이 잠재적인 배우자 후보를 지속적으로 탐색하는 과정을 다루며 뜨거운 인기를 모았지만, 2010년대 TV에서 청춘남녀들의 밀고 당기는 연애담은 마니아들의 즐길거리에 그치기 일쑤다.
요즘의 인기 드라마들이 즐겨 묘사하는 것은 관계맺기에 서툰 어른아이들의 운명적 결합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계획되지 않은 임신이다. 서로 잘 모르거나 앙숙이었던 남녀는 우발적 동침의 결과로 임신해 결혼하고, 출산이나 태교를 통해 갈등을 극복하고 성숙한 부부가 된다(<왕가네 식구들>[KBS2], <운명처럼 널 사랑해>[MBC]). 연애 초반의 탐색전을 생략한 결정론적 짝짓기도 유행이다.
많은 드라마가 극중 남녀 주인공이 어려서부터 천생연분이었음을 주장하고(<응답하라 1997, 1994>[tvN], <왔다! 장보리>[MBC] 등), 가상 결혼을 표방하는 <우리 결혼했어요>(MBC), <님과 함께>(JTBC)의 출연자 대부분은 제작진이 맺어준 짝과 순조롭게 교제한다.
우연히 부모가 되고, 첫사랑과 운명으로 엮이고, 남이 맺어준 초면의 짝과 잘 지낸다는 설정은 혼인은 개인의 선택이라는 오늘날의 믿음에 비춰볼 때 이율배반적이고 복고적인 느낌마저 준다. 초월적 운명과 인연을 강조하는 혼인 서사에서 선택이라는 미명 아래 상대를 재단하고 평가받는 세태에 대한 피로감, 학력과 경력 경쟁에 쫓겨 타인과 교감하는 법을 못 배운 이들의 두려움을 봤다면 비약일까. 가정을 꾸리고자 하는 갈망(의안집 45항)과 소통의 어려움 사이에서 망설이는 젊은이들에게, 쉽지 않은 혼인의 길을 앞서 걸어간 현실의 부부들은 매력적인 증언(의안집 59-60항)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경향잡지 기자를 거쳐 미디어부에서 언론홍보를 담당한다. 2008년 <매거진T> 비평 공모전에 당선된 뒤 <무비위크>, <10아시아> 등에 TV 비평을 썼고, 2011년에 단행본 <예능은 힘이 세다>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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