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 이후 이 땅에서는 어떠한 변화와 쇄신의 움이 트고 있는가? ‘프란치스코 효과’를 낳고 있는 교황이 한국교회에 전한 복음의 씨앗이 어디서 어떻게 뿌리 내려가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회장 이광옥 수녀)와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이 함께 주최하고 성가소비녀회(총원장 차진숙 수녀)와 (사)우리신학연구소(소장 경동현)가 주관해 9월 27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세미나는 복음적 삶에서 멀어지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재를 돌아보게 한 장이었다.
‘교황 방한 이후, 한국천주교회를 말한다!’를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넘쳐났다.
강연 1 - ‘쇄신의 법칙 : 제도적 리더십과 교회’
첫 발제자로 나선 박상훈 신부(예수회)는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대변되는 철저한 개혁의 리더십이 로마에만 있는 현실”에 대한 진단을 바탕으로 한국교회가 딛고 선 지형을 바라봤다.
박 신부는 ‘쇄신의 법칙 : 제도적 리더십과 교회’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성직중심주의라고 불리는 교계제도의 부작용이 교회 개혁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며 한국교회가 당면한 현실을 분석하고 “원래 교계제도는 주교와 교황이 인간의 신앙과 희망을 그 깊이에서부터 구축해 사람들이 보다 생동하며 세상을 살아가게 효과적으로 도와주도록 설계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교계제도를 통해 신앙을 전달한다는 것은 자기 재산을 넘겨주는 유언장과 같은 것이 아니다. 신앙의 핵심에는 살아계신 하느님과의 관계가 있다. 신앙인들이 서로 나누어 가지는 물음과 의문을 통해 서로 배우고 성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소통이 부족한 한국교회의 현실을 논박했다.
박 신부는 또 “정의와 자비는 어느 것이 먼저다 할 것 없이 묶여져 있다. 정의에 대한 관심 없이 사랑에만 배타적으로 초점을 두려고 하는 것이 교회의 큰 유혹이다. 정의의 과제가 미완인데 사랑이 실현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다”고 한국교회의 현실을 꼬집었다.
그는 교회 개혁의 길로 ▲교회 통치나 문화를 바꾸는 구조의 개혁 ▲가톨릭 정체성을 확고히 해 교회를 일치시키는 규율적 개혁 ▲신앙의 깊이를 통한 복음적 개혁 등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서는 “교회 리더십의 분별력과 동시에 개방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회 쇄신과 관련해 특별히 “‘성직자들의 문화’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미성숙함, 배타적인 남성 중심주의, 과도한 사생활 보호 등 부정적인 성직자들의 문화가 보다 복음에 뿌리를 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연 2 - ‘물신의 시대, 봉헌생활이 가야 할 길’
이어 발표에 나선 강신숙(디모테오) 수녀(성가소비녀회)는 수도자의 예언자적 소명을 돌아봄으로써 교회 쇄신의 밑그림을 그렸다.
강 수녀는 ‘물신의 시대, 봉헌생활이 가야 할 길’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수도자들은 모든 그리스도인이라면 가야 할 길에서 유독 열정과 드러나는 방식으로, 교회 제도권에 종속되지 않은 채, 근원적 체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하고 “하느님에 대한 낡은 이미지, 진리에 대한 진부한 신학형식, 오래된 수도회 관계 모델에 입각한 낡은 개념을 송두리째 뽑지 않으면 수도회 쇄신을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교회와 세상이 위기에 맞닥뜨릴 때마다 수도회들이 쇄신과 창조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로 ▲강한 임팩트를 지닌 운동으로서 출발했다는 점 ▲태생적으로 제도권에 종속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꼽고 “위험을 무릅쓰는 일은 하느님을 유일하고 확실한 동반자로 삼아 그분과 함께 걷는 것이며, 이것이 수도회를 특징짓는 본질적 정체성이다”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강 수녀는 “수도자는 ‘누구보다 먼저 위기를 바라보는 사람’으로, 수도공동체는 교회 심장부에서 ‘개혁적인 기억의 제도적 형태’로 존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참으로 예언자적인 수도생활을 해나가고자 한다면 병적인 개인주의를 경계하고, 순응주의가 아니라 더 큰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강연 3 - ‘교황의 눈으로 본 한국 가톨릭교회의 현실과 개혁과제’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우리신학연구소 김항섭(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이사장은 ‘교황의 눈으로 본 한국 가톨릭교회의 현실과 개혁 과제’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한국교회가 봉착한 위험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했다.
김 이사장은 “한국교회가 가난하고 궁핍한 이들과 힘없는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외적인 성장과 번영에만 주목함으로써 물질주의, 무한경쟁 사조, 비인간적인 경제모델 등 세속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교황의 판단이다”고 밝히고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한갓 ‘사교모임’이 되는 위험과 중산층의 교회가 되려는 유혹을 경계하라는 것이 교황이 한국교회에 던진 메시지”라고 말했다.
그는 “교황의 쇄신 요구는 이미 중산층 안에 깊숙이 똬리를 튼 한국교회로서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교황이 한국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교황의 메시지에 반하는 부정적인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하고 “교황이 뿌리고 간,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로의 쇄신이라는 씨앗이 질식되지 않고 건강하게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교회 구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평신도들이 제 몫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미나 ‘교황 방한 이후, 한국천주교회를 말한다!’ 주요 내용
‘한국교회 쇄신’, 사제·수도자·평신도 모두의 몫
발행일2014-10-05 [제2913호, 7면]
▲ 9월 27일 오후 2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교황 방한 이후, 한국천주교회를 말한다!’ 세미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