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듣는 순간, 정신이 멍해지면서 제발 이 소식이 단지 헛소문이기를 바랬습니다.
늘 눈에 띄던 말썽꾸러기 말루악이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았음에도 걱정은커녕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조차 몰랐던 스스로에게 후회되고 당황스러운 소식이었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으니 슬픔도 느껴지지 않더군요. 담담한 마음으로 시신을 누군가 수습했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딩카 풍습에 따르면 오직 가족만이 시신을 수습할 수 있기에, 늪지대에 시신이 방치되어 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이미 날은 저물었고, 쉐벳에도 뒤늦게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까지도 시신을 찾는 친척이 없으면 우리가 찾아오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쉐벳에 있는 신부님들도, 그리고 저와 요셉형제님도 모두 마음이 아팠습니다.
손목의 상처로 골수염을 안고 있던 말루악, 간질증세도 보여서 그동안 치료를 하며 보살펴주고 있었는데, 이렇게 준비 없이 이별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묵주기도를 바치고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차가운 늪지대에서 방치되어 있을 아이를 생각하니, 꼭 저를 원망하고 있을 것만 같았고, 혹시라도 들짐승들이 시신을 훼손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에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결국 한밤중에 나가 마을사람 둘을 깨워, 함께 시신을 찾으러 나갔습니다.
때마침, 사고가 난 장소로 가는 숲길에서 표창연 신부님도 만났습니다. 만나기로 약속한 것은 아니었지만 표 신부님도 저와 같은 마음으로 길을 나섰던 것입니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 함께 출발한 마을 청년 둘이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고지점 주변의 마을 사람들이 또다시 우리의 마음을 애타게 했습니다. “가족 이외에 시신을 가져가서는 안 된다” “숲에서 죽은 사람은 절대 땅에 묻어서는 안 된다. 마을 사람들에게 저주가 내리기 때문이다” 등 갖은 이유를 들어 시신을 거두어가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그 마을 추장에게 사람을 보내, 내가 이 아이의 실질적인 가족임을 설득시켰습니다. 그리고 시신을 안전하게 보관하면서 아이의 부모를 찾는 노력을 하겠다는 약속도 하고 나서야 간신히 시신을 운반해올 수 있었습니다.
저희 일행은 새벽 2시가 넘어서야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곧 해가 뜨자마자 우물가로 아이의 시신을 옮기고, 요셉형제님의 도움을 받아 시체를 씻었습니다. 이미 시신의 항문이 열려 오물이 새어 나오고 악취가 나기 시작해 모든 구멍을 거즈로 막아야 했습니다.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말루악의 몸을 닦는 것이 너무도 낯설어서, 머릿속으로는 그저 ‘말루악아,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한 미안하다’라는 말만 되뇌었습니다.
말루악에게 새 옷을 입히고 성당에 데리고 갔습니다. 세례를 받지 못했지만 종종 아침미사에 참석하곤 했던 말루악에게는 이 세상에서 마지막이 될 미사를 마을 사람들과 함께 봉헌했습니다. 눈물이 나더군요. 하지만 미사를 통해 모두와 작별인사를 하고 하늘나라로 보내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 미사 후, 말루악의 엄마를 수소문 끝에 찾았고 아강그리알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말루악은 딩카족의 풍습에 따라 숲속 깊은 곳으로 옮겨진 후 나뭇가지를 덮은 채로 큰 나무 밑에 앉혀졌습니다. 마치 나무에 기대어 앉아 곤히 잠든 듯이….
▲ 아강그리알 선교지의 로고. 로고의 형상이 딩카사람들의 무덤모양과 닮았다. 말루악의 장례미사가 아강그리알 성당의 첫 장례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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