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칙이 쓰여질 당시 가톨릭 교회 안에서 교회일치운동은 30년 정도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 중 17년 동안 교황으로 재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시 말해서 교황님이 언급하고 있는 일치운동의 성과들은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점이 적지 않다. 실제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일치를 이론적으로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주도해 왔다.
교황님이 교회일치를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관계에 대한 다음의 표현이 잘 드러내고 있다.
“교회는 두 허파로 숨을 쉬어야 한다”(54항). 한쪽 폐로만 숨을 쉬는 이는 건강하지 않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마찬가지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갈라져 있는 그리스도교 교회는 현재 건강한 상태가 아님을 이 표현은 극명하게 드러낸다.
동방교회와의 일치에 대한 교황님의 적극적인 의지는 동방교회 출신인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 선교 1100주년을 맞이하는 1984년을 희년으로 선포하고 서방교회 출신의 베네딕토 성인과 더불어 두 성인을 유럽의 공동 수도성인으로 선포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폴란드 출신의 교황님의 적극적인 활동에 대한 구공산권 지역의 유보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동방교회와의 화해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였다.
아울러 교황님은 교회를 대표하는 베드로의 직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의 완전하고 가시적인 친교를 위해서 “새로운 상황에 개방적인 수위권 행사 방식을 찾도록” 다른 그리스도교 교회의 목자들과 신학자들에게 대화를 제안한다(95-96항). 이는 교회와 종파를 초월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사고의 가능성을 열어 주는 파격적인 제안이다.
교황님의 수위권은 가톨릭 교회 안에서 당연히 인정되기는 하지만, 동방교회와 성공회와 개신교 측에서는 그 필요성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현재의 수행 방식을 수용하기를 거부한다. 교황님은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수위권 수행방식이 아니라 할지라도 교황직이 하느님 자비에 봉사할 수 있다면, 백성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평화로운 풀밭으로 인도할 수 있다면 일치의 첫째 종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연구할 의지를 표명한다.
아쉽게도 이러한 제안은 가톨릭 교회 밖에서나 가톨릭 교회 안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제안은 현재의 수위권 행사 방식이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니며 수위권의 본질을 실현하기 위해서 변경 가능하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는 점에서 미래의 신학적 토론을 위한 문을 열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이 회칙이 선포될 무렵 교회일치운동은 어느 정도 누적된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꾸준히 다른 그리스도교 교회들과 신학적 대화가 진행되어 왔지만, 타협을 모르는 절대적 진리에 대한 충실성 및 교의를 명확히 제시하라는 요구는 신학적 대화로 하여금 좀처럼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일치운동의 영성적 차원을 강조하고 교회일치운동은 전체 교회의 과제로 재천명하며 모든 교회일치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고 있다.

▲ 그리스도교 11개 교단이 함께 한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 협의회’가 지난 5월 창립됐다. 천주교와 개신교 공동기구로 한국 교회일치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한국 상황에 적용
이 회칙이 반포된지 20년이 가까워 오지만 이 회칙은 우리나라 교회가 여전히 귀기울여 들어야 하는 교황님의 권고를 적지 않게 담고 있다.
한국교회에서 1965년 최초의 일치기도회가 열린 이후 70년대는 공동번역 성경이 출간되었으며 민주화 과정에서 공동선을 위한 천주교 개신교 간의 협력은 교회일치운동의 이상에 부합하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이 바뀌면서 다시금 한국에서 천주교회와 개신교회는 보다 가까워졌다고 말하기 어려운 시대를 지내고 있다.
2002년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 운동이 새로이 출발한 이후 올해 ‘한국 그리스도인 신앙과 직제 협의회’가 설립되었다. 예수교 장로회 통합, 기독교 장로회, 감리교, 구세군, 성공회, 정교회, 루터회, 기독교 하나님의 성회, 복음교회 등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참여하는 교단들과 천주교에 의해 마련된 이 기구는 개신교와 천주교의 공동기구로서 한국 교회일치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교회 사목일선에서는 교회일치운동이 그런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일부 신자들의 관심사 이상으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회칙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시대의 징표를 인식하고 일치운동에 적극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일치운동은 신앙의 빛과 사랑의 인도를 받는 그리스도인 양심의 의무입니다”(8항),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촉진하는 교회일치운동은 교회의 전통적 활동에 덧붙여진 일종의 ‘부속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치운동은 교회생활과 활동의 근본적인 고유 부분입니다”(20항).
일치운동은 성령의 움직임에 의한 시대의 징표로 드러났다는, 더 이상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이라는 교황님의 권위있는 해석을 한국교회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교황님은 또한 교회일치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개신교신자들을 비롯하여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형제로 인정하라는 호소이다. 다른 그리스도교 교회 안에서도 성경, 참된 경건함,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세례 등이 발견됨을 지적하는 교황님은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들 안에 이러한 요소들이 발견되고 있는 만큼, 하나인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들 가운데 실질적으로 현존”한다고 단언한다(11항). 이어 “적대감과 갈등을 넘어 모든 당사자가 상대를 동반자로 인정”하라고 호소한다(29항).
일치운동에는 여러 가지 과제와 단계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상대방에 대한 인정이다. 개신교 신자도 그리스도인이고 천주교 신자도 그리스도인이다. 개신교 신자들에 대한 거리감을 정당화시키는 구실을 찾으려 애쓰기 전에 그들과 천주교인들은 모두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났으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같은 제자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선종하신 교황님께서 한국교회에 주시는 가르침이다.
회칙의 본문은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편, 교회일치 문헌 1권, 43-137쪽에 실려 있다. 또한 주교회의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cbck.or.kr)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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