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의료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1950년대 미국의 ‘미네소타 플랜’ 덕분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 후 후진국 상태를 면치 못하던 한국에 특별 의료 지원 체계를 마련, 후원했던 미국 미네소타대학의 프로그램을 말한다. 이 미네소타 플랜을 통해 서울대 의대 의료진은 미국의 선진 의료기술을 배우고 돌아와 한국 의학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지난 9월 4~21일 라파엘인터내셔널(이사장 김전)이 이러한 ‘미네소타 플랜’ 경험을 토대로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CPD(Continuous Professional Development) 교육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실시했다. 해외 현지 의료진 질적 향상과 진료 환경 개선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시행된 몽골 의사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이른바 ‘몽골 플랜’이다.
17년 동안 국내 이주 노동자들에게 무료진료를 펼치며 낯선 이국땅에서 생활하는 이주민들에게 교회의 따뜻한 의료 손길을 보내온 라파엘클리닉이 구체적인 해외 의료인 지원에 눈을 돌린 사례로 주목된다.
교회 안에 다방면으로 의료봉사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현지 의료 현장을 찾아 의료인들을 직접 교육하는 프로그램은 해외 의료 봉사의 새 지평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몽골 현지 의료진들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 첫 번째 CPD 교육 프로그램에 가톨릭신문이 단독 동행했다. 그 내용을 앞으로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첫 번째 편에서는 라파엘인터내셔널의 몽골 의료지원사업 내용을 소개한다.
몽골 병원은
“여기가 병원이야?”
몽골 칭기스칸공항에서 1시간 반쯤 달려 바양주르흐구 외래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든 생각이다. 창밖을 통해 본 건물 외관들이 비슷비슷해 병원인지 알기 어려웠다. 옛날에 지은 건물들은 대부분 러시아양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바양주르흐구 외래병원은 아침부터 환자들로 북적인다. 배앓이를 하는 아이, 임산부, 예방접종 환자 등 다양한 환자들이 눈에 띈다.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는 환자들 모습이 학교 복도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수흐바타르구 병원이다. 바양주르흐구 외래병원에 비해 훨씬 깔끔한 느낌이었다. 바양주르흐구 외래병원은 소아과와 산부인과를 제외한 나머지 학과의 경우 의사들이 한명씩만 있다. 응급환자가 생기더라도 담당의사가 쉬는 날에는 진료를 받을 수 없다. 그만큼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바양주르흐구 외래병원과 수흐바타르구 병원은 몽골에서 2차 병원에 해당한다. 몽골 공공의료체계는 외관상으로 보면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갖춰져 있다. 국가행정단위마다 병원이 있기 때문이다.
몽골 의료 기관은 1차, 2차, 3차로 나뉘는데, 가장 큰 단위가 3차 의료기관이다. 3차 병원은 몽골 보건부가 직접 관리 운영, 제1병원, 제2병원, 제3병원, 모자병원 등으로 구분된다.
3차 병원에 비해 1차 의료 및 2차 의료 수준의 의료기관 현실은 녹록치 않다. 1차 의료에 해당하는 가정병원을 둘러보면 현실은 더욱 열악하다. 명색이 진료소인데 의자 하나와 침상 하나가 전부였다. 한국 진료실에서 흔히 보던 의사의 책상, 간단한 의료기기조차 없이 단촐했다. 의료 환경뿐 아니라 가정병원에서 진료할 수 있는 부분도 적다고 한다. 우리나라 보건소에 해당하는 가정병원은 주로 예방주사, 약 처방만 가능하다. 가정병원에서 간단한 처방을 받은 후 환자들은 2차 병원(구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는다.
몽골 의료시스템 개선을 위해
라파엘인터내셔널 몽골 의료지원사업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라파엘인터내셔널 발족과 동시에 몽골 지원 사업이 시작됐다. 연 두 차례 몽골 무료진료 및 의료기기 등 지원으로 기초적인 의료협력 기반을 마련하고, 의료캠프나 의료진 초청연수를 시행해 왔다.
특히 울란바토르 항올구역 보건소 의료환경 개선에 앞장섰다.
라파엘인터내셔널의 몽골 사업 초기부터 함께해온 전 항올구역 제1진료소장 라그바수렌(B.lkhagvasuren)씨는 라파엘인터내셔널 의료지원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2007년부터 라파엘인터내셔널의 지원을 받았는데 치료환경과 시설 개선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2009년부터는 5년간 재활의학과 교육도 시행하고 있어요. 한국 의료진에게 배운 것을 토대로 2011년부터 방문 진료팀을 운영하지요.”
그녀는 연신 라파엘인터내셔널의 지원 활동에 고마움을 드러냈다. 이제 몽골 항올구역 보건소 의료진들은 한국 의료진의 도움 없이 자생적으로 진료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됐다.
라파엘인터내셔널은 항올구역 진료소 의료진과 환경 변화 모습을 지켜보면서 단순히 의료캠프를 시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 몽골 환자들이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이때 라파엘인터내셔널 의료진은 ‘미네소타 플랜’을 떠올렸다. 이번 CPD 프로그램이 막을 올린 구체적 배경이다.
이전의 해외의료지원과 CPD 프로그램의 차이점은 ‘현지 의료진의 질적 향상과 진료 환경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선 점’이다.
라파엘인터내셔널 손정화 국장은 “몽골 의사들이 스스로 중심이 되어 서로 문제점을 논의하고 그 안에서 의료발전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마련했다”며 “단순히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협력과 의사소통을 통해 몽골사회의 조직문화를 개선하고 환자 진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 개발 및 정착을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한국교회의 해외의료지원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다양한 가톨릭 의료복지단체와 대학병원들이 몽골, 캄보디아, 필리핀, 미얀마 등 의료 환경이 열악한 나라에 잇달아 봉사단을 파견, 사랑의 인술을 펼쳐왔다. 주로 의료캠프, 장비 기증, 환아 초청, 의료진 초청 연수 등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라파엘인터내셔널의 CPD 프로그램은 단순 해외의료지원을 넘어, 현지 사회에 스며들어 현지인들이 스스로 진료를 하거나 병원을 운영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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