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당 옆의 빈 터를 굳게 다지고, 건기 동안 열심히 만들어 두었던 진흙 벽돌들을 쌓아올리고 철자재를 이용하여 기둥을 만들고, 숲과 강가에서 채취한 대나무와 갈대를 엮어 지붕을 만들어 올려서, 제법 큰 건물을 지었습니다.
이렇게 3개월에 걸쳐 마을 청년들과 함께 힘을 모아 완성해낸 ‘아강그리알 도서관’은 남수단의 원형 가옥인 ‘투쿨’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가 잘 수 있는 일반 ‘투쿨’과는 달리 아이들 50명이 들어가 앉아도 될 만큼 넉넉히 큰 건물입니다.
아이들이 읽을 책들은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어렵게 구해왔습니다. TV와 인터넷이 없어 세상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접할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서 생생한 사진과 그림이 곁들여진 소설책과 동화책들을 위주로 구입해왔습니다. 비록 아직은 3단짜리 책장 하나에 70여 권밖에 되지 않는 책들을 갖추고 있어서 학급문고 수준밖에 되지 않지만 도서관을 찾은 마을 사람들은 너무도 뿌듯해합니다. 바다도 산도 겨울에 내리는 눈도 본 적 없는 이곳 아이들은 책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새로운 세계에 너무도 신기해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백과사전을 구해보려고 알아보았지만 구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다양하고 자세한 정보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요즘, 백과사전은 더 이상 출판되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그 유명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도 책으로는 발행을 중단한지 꽤 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책이 차지하고 있던 정보의 영역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는 현대에도 책은 여전히 교육을 위한 중요한 수단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인성과 지성과 영성을 기른다’는 발상은 아직까지도 어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곳 남수단에는 이렇게 중요한 책을 발행하는 곳도, 대여하는 곳도, 판매하는 곳도 없습니다. WFP를 통해 학교에 식량이 지원되고, NGO 단체를 통해 책가방과 공책도 지원되지만 읽을 책은 구할 수 없고, 정부를 통해 공급되는 교과서마저 학생 수에 모자라게 지급됩니다.
남수단의 많은 아이들은 어쩌면, 책을 접해보지 못한 채로 곧바로 인터넷을 접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직은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곳이지만, 분명 몇 년 후에는 이곳에도 온갖 현대 문물이 들어오게 될 테니까요. 아이들이 처음 세상을 접하는 창문이 책이 아니라 컴퓨터가 될 상황을 상상해보니,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마치 원시인이 동굴 밖을 나오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는 어색한 상황이 되지 않을까요?
이곳 사람들은 광활한 땅에서 살고 있지만, 너무도 좁은 견문을 가지고 오랜 세월동안 고착되어온 문화의 틀 안에 갇혀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나마 세대를 거쳐 이어오던 문화마저도 계속되고 있는 내전으로 인한 분열과 단절로 인해 정체성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남수단의 미래를 위해, 아강그리알 아이들만큼이라도 독서를 통해 소양을 쌓고 정체성을 찾고 폭 넓은 꿈을 키워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편리함은 책이 인터넷보다 못하지만, 독서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고 정서적으로 굳건하게 해 줄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 더 많은 책들이 모여 도서관을 가득 채울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독서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 아강그리알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책을 보고 있는 모습.
※ 남수단과 잠비아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 후원계좌 03227-12-004926 신협 (예금주 천주교 수원교구)
※ 수원교구 해외선교후원회
http://cafe.daum.net/casuwonsudan
※ 선교사제들과 함께할 다음과 같은 봉사자를 찾습니다.
- 사회복지, 의료분야, 영어교육, 태권도교육 등
※ 문의 031-548-0581(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