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에 가족과 함께 ‘새싹들의 집(www.saessac.org)’에 가니 자상한 세실리아 수녀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대개 의지할 곳 없는 만삭 임산부들이 와서 출산하고 3개월 정도 몸조리하다 가는 곳이다.
세상은 공평하지도 못해서 그 집에 오는 처녀들은 단돈 천 원도 없이 빈 몸으로 온다며 이렇게 쓸쓸하게 지내는 아이들은 세상에 대하여 무슨 생각을 하겠느냐고 수녀님은 고개를 돌렸다.
대개 십대 후반이나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대다수인데, 아무래도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 외로움과 원한이 묻어난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은 대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여 중도 포기하고 지내다가 성년이 되면서 사랑타령에 넘어가거나, 원조교제를 하다가 무방비로 아이가 생긴다. 무서움에 지우고 싶어도 낙태가 금지된 법이 무섭고, 시술비용이 상당하다. 의사도 시술을 해주지 않으려하고, 돈도 없어 결국 빈손으로 찾아드는 곳이 미혼모들의 쉼터이다.
태아도 산모의 애타는 사정을 아는지 아주 조그맣게 자라다가 결국 유산이 되는 수가 많다고 한다. 다행히도 이곳 보금자리를 찾아오면 작게만 자라던 뱃속 아기는 안정된 상황을 눈치 채는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 배가 남산처럼 불러온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임신을 숨기던 엄마가 복띠를 하고 생활해서 무뇌아로 태어난 아기가 곧 하늘에 올랐다고 한다.
이 집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대개 또다시 버려져서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사내아이들은 교도소로, 여자아이들은 술집을 전전하다가 미혼모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일이 많다며 혀를 찼다. 나는 같은 또래의 남자친구가 성욕을 절제하지 못하여 생기는 아기인줄 알았다. 수녀님은 고개를 흔들며 그 아이들을 임신 시킨 사내들의 80%가 중년 아저씨들이라며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여기는 쌀부터 기저귀까지 모든 것이 필요해요.”
수녀님의 말을 곱씹으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 부부는 말이 없었다. 욕정에 눈이 멀어, 불우한 소녀들을 저 지경으로 만들고 도망 가버린 아저씨들. 하느님은 도대체 가위를 무엇에 쓰려고 들고만 계시냐고 주먹을 불끈 쥐는데 갑자기 내 귀에서 “네가 내 가위이다. 네가 가서 저 아이들의 사슬을 끊어주렴”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어느새 겨울이 소리 없이 다가온다. 이번 주말에는 쌀이라도 한 포대 지고 다시 그 곳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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