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금지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분명하다. 하지만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자살한 사람의 구원에 대해 절망하지 말고 기도해줄 것을 권고한다. 구 교회법(1917)에서는 자살한 사람에 대해서는 교회에서의 장례식을 금지했다. 하지만 새 교회법(1983)은 ‘자살자의 인간적인 나약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 금지 조항이 삭제됐고, 교회에서의 장례식 가능 여부에 대해 ‘교구 직권자에게 문의하여 그 판단을 따라야 한다’(1184조 2항)며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하지만 이것이 교회가 자살의 정당성을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교적 애덕의 차원에서 유가족을 위로하고, 예의를 갖추어 장례를 치러주는 것을 더욱 바람직한 사목적 태도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유가족을 배려하고 자살자의 자살 동기와 배경에 따라서 사목적 판단을 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살 동기와 당시 상황·배경 등에 대해 아무런 사목적 검토 없이 장례미사를 무조건 거부하거나, 반대로 모든 자살에 대해서 획일적으로 장례미사를 허용하는 것은 신자들에게 혼란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살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로 대두되면서, 그동안 교회 안에서 개별적으로 자살 예방 활동을 해왔던 단체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지난해 10월 ‘한국 가톨릭 자살 예방 협회’를 발족한 것은 한국교회 전체의 생명운동을 위해서 고무적인 일이다. 가톨릭교회가 자살 예방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근거는 ▲생명과 자살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 ▲한국 가톨릭교회의 생명운동에 대한 가르침과 전통 ▲생명의 말씀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 ▲사회 구성원으로서 공유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교회 전체 뿐만 아니라, 특별히 수원교구에서도 자살 예방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교구의 자살 예방 활동은 가장 먼저, 인간 생명의 가치와 생명 경시 풍조에 대한 자각과 성찰에서 출발해야한다.
나아가 교구의 ‘생명운동 지침’에 따라서 기도와 전례, 교육과 홍보, 사목적 배려와 지원, 법률과 정책활동 등 생명수호 활동 네 가지 주요 영역과 교구-대리구-본당을 연계한 전체 활동을 통합 조정하는 기구의 설립이 필요하다. 이러한 교회내 통합적 조정 기구는 광역 및 지역 자살예방센터와의 민관 협력을 지원하고, 한국 가톨릭 자살예방 협회 등 관련 단체와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생명 존중의 문화를 교회 내부뿐만 아니라 교회 밖으로도 널리 확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살 예방 교육을 담당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의 양성과 자살 예방 교육 체계를 갖추는 과제 역시 시급하다. ‘자살에 대한 인식도 및 태도’에 대해서 한국과 일본에서 실시한 의식 조사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에 비해 자살 시도의 위험한 상황에 개입하고자 하는 태도는 높은 반면, 그 효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낮게 인식하고 있다. 분명히 적절한 개입은 생명을 구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랑 어린 관심의 표현이 위험에 빠진 생명을 구할 수 있으며, 자살의 위기에 처한 지인에게 어쩌면 내 자신이 가장 중요한 도움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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