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허망(虛妄)이라고 불리는 ‘인간 생명연장’의 꿈이 하나, 둘 실현되고 있다. 인간 세포를 다시 젊게 만드는 명약이 발견됐고, 현재 영국에서는 정신을 다른 대상물로 옮기는 공상과학 같은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이처럼 의학과 과학의 발달로 생명연장에 대한 연구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죽음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삶의 마지막 관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게 되고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내일의 행복을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의 모습에서 죽음에 관한 깊은 성찰은 찾아보기 어렵다.
11월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특별히 되새기는 위령성월이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또한 자신의 죽음을 묵상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이 뜻깊은 시기에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죽음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이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본다.
# 죽음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교회는 죽음이 인간의 죄로부터 왔다고 가르친다. 태초의 인간이 하느님을 거슬러 지은 죄를 원죄라 하는데, 이 원죄 때문에 인간은 죽을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는 죽음에 대한 이스라엘의 태도를 전해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을 창조한 하느님만이 인간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분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또한 죽음을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만나는 하나의 관문이자 ‘하느님의 축복’으로 받아들였다. 때문에 그들에게 죽음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신약성경에서는 죽음의 의미가 더욱 심화된다. 무엇보다 신약에서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결하지 않고는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그리스도는 원죄로 인해 인간에게 주어진 죽음과 정면으로 대결했고, 부활로써 죽음을 넘어섰다. 이로써 이제 더 이상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완성을 향한 과정이자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 되었다. 원죄로 인해 죽음에 직면해야 했던 인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구원되고 영원한 생명을 향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긴 방법이 죽음을 통해서였다는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고통과 죽음을 두려워했고 할 수만 있다면 “그 잔을 내게서 멀리 해달라”고 하느님 아버지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결국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며 돌아가셨지만 그리스도는 그 고통과 죽음을 통해 생명을 얻었다.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간 이들의 모습은 순교자들의 삶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교회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인간적인 불행과 참을 수 없는 고통, 두려움의 대상인 죽음을 스승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기꺼이 받아들였고, 이로 인해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가르친다.
# 연옥 교리와 모든 성인의 통공에 대한 교리
위령성월은 특별히 연옥 영혼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연옥은 죄의 벌을 다 치르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천국으로 들어가기 전 죄를 정화하고 단련 받는 곳이라고 교회는 가르친다. 그러나 스스로 정화할 수 없는 연옥 영혼들은 세상에 있는 신자들의 기도와 자선행위를 통해 도움을 받는다.
따라서 교회는 연옥 교리에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의 교리까지 포함해서 신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11월 위령성월을 보내면서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모든 성인의 통공’에 대한 교리이다.
모든 성인의 통공에 대한 교리는, 시작도 끝도 없으시며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느님 앞에서는 천상의 성인들 또한 교회의 지체이자 구성원이라고 가르친다. 현세의 교회는 연옥 영혼들의 교회, 천국 성인들의 교회와 함께 한 몸을 이룬다.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유대감으로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는 우리는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할 수 있으며, 천상에 있는 성인들도 우리와 죽은 영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위한 기도는 단순히 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신앙은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생명의 영원성을 깊이 깨닫게 하고 큰 위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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