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죽음’은 슬픔과 안식을 동반한다. 더불어 그리스도인의 죽음이라면, 여기에 부활의 희망이 함께 해야 한다. 11월 위령성월, 동양과 서양의 신앙인들은 죽은 자들을 어떻게 위로해왔을까.
레퀴엠과 연도
서양의 진혼곡 ‘레퀴엠’은 무슨 뜻일까. ‘죽은 자들을 위한 미사’ 가운데 입당송의 첫 구절 ‘주님,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의 첫 번째 단어 ‘레퀴엠’(안식)에서 따온 것이다. 한국의 연도(煉禱)는 ‘불릴 연’, ‘빌 도’자를 쓴다. 말 그대로 ‘연옥영혼을 위한 기도’로서 구전되는 가락을 붙였다.
레퀴엠과 연도에는 죽음에 대한 시대상을 담은 교회의 생각과 당시 사람들의 사상이 들어있다. 우선 르네상스 시대에는 레퀴엠을 그레고리오 성가 선율을 주제로 사용했고, 바로크 시대에는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벗어나 바로크 음악양식에 의존했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전례와 교회적 용도에서 해방돼 오페라적으로 작곡되기도 했으며(베르디의 레퀴엠), 죽음을 천상 평화와 행복한 휴식(포레의 레퀴엠) 등으로 바라봐 죽음에 대한 생각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연도의 뿌리는 「천주성교공과」와 「천주성교예규」로 볼 수 있는데, 선교사들이 쓴 중국기도서의 번역서였다. 2003년 주교회의에서 「상장예식」을 출간하기 전까지 한국교회의 장례기도서로 쓰였는데, 이 내용을 바탕으로 전국에서 구전돼 각기 달리 노래되던 것을 1991년 오선악보로 수록, 모두 같은 가락으로 연도를 노래할 수 있도록 했다.
부활 신앙이 함께해야
동서양의 장례전례 모두 가장 중요한 것은 ‘파스카적 특성’이 있는가에 대한 여부다. 따라서 영혼을 위로하는 레퀴엠과 연도 또한 내용에 대한 다양한 지적이 있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레퀴엠은 부속가 ‘분노의 날’(Dies irae)이 트리엔트공의회 때 공식전례로 정해졌지만, 이후 ‘장례예식은 그리스도인 죽음의 파스카 성격을 더욱 명백히 드러내야’(전례헌장 1항) 한다는 이유로 장례미사에서 생략됐다.
이러한 점에서 연도는 중세의 죽음과 심판에 대한 이해가 상당 부분 들어있어 장례전례 안 부활의 ‘파스카적 특성’이 부각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까지 한국교회 모든 신자들이 연도로써 슬픔을 표하고 죽은 이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이다.
레퀴엠과 연도는 가락과 내용을 볼 때 얼핏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목적 지향은 같다. 죽은 자를 기억하고, 슬픔을 노래하며, 영원한 안식과 생명에 대한 원의를 갖기 때문이다. 위령성월, 진혼을 위한 가락인 레퀴엠과 연도가 동서양의 신앙인 모두에게 특별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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