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A양의 요즘 최대 고민은 ‘공부’다. 한국어가 미숙한 A양에게 학교 수업은 어렵기만하다. 집에서 새벽 2시까지 혼자 공부를 해보지만 성적은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 B군은 얼마 후 어머니의 나라인 베트남으로 간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버겁고, 사교육을 받을만한 형편도 아니다. 게다가 최근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머니 홀로 B군과 여동생을 키워야 하는 상황이다. B군은 결국 한국에서의 학업을 포기하고 어머니 나라에 가서 외가 식구들과 살기로 결정했다.
우리나라 다문화가정 학생이 매년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다문화가정 초·중·고 학생 비율은 2012년 전체 학생의 0.7%(4만6954명), 지난해 0.86%(5만5780명)에서 올해 1.07%(6만7806명)로 증가했다.
반면, 다문화가정 학생의 취학률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떨어졌다. 경기도의회가 작성한 ‘다문화가정 교육정책 개선방안’(2012)을 보면 초등학생 36%, 중학생 51%, 고등학생 69%가 학업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난다. 부족한 한국어 실력과 차별, 부적응 등을 이유로 아이들이 학교를 떠난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일원인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학업 중단 위기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교구 이주사목위원회(위원장 최병조 신부)는 지난 2012년 10월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 ‘우리드림센터’를 개소하고, 이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우리드림센터를 찾았다.
10월 말, 중간고사가 끝난 기간이지만 수원 화서동에 위치한 우리드림센터는 학생들의 학구열로 뜨겁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센터로 달려온 초등학생들은 이미 영어 수업 삼매경에 빠져 있고, 한 여고생은 선생님과 1대1 멘토 교육을 받고 있다. 다른 강의실에서는 얼마 전 러시아에서 온 초등학교 1학년 남학생이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선생님과 함께 보드게임 중 하나인 젠가도 하고, 동요도 부르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눈높이에 맞는 수업 덕분에 한국어 실력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지민(가명)양은 “학교에서 그냥 넘어가는 내용을 센터에서는 반복해서 설명해주니깐 좋다”면서 “게다가 선생님과 친구들 몇 명만 같이 공부하니까 친하게 지낼 수 있어서 더 좋다”고 말했다.
센터에는 현재 27명의 다문화가정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독서실과 강의실, 상담실을 두루 갖추고 있는 센터는 각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무료로 제공한다. 한국어, 영어, 수학은 물론 학생들이 문화적인 혜택을 받기 어려운 형편인 것을 감안해 오카리나, 사진, 미술, 요가 수업도 진행한다. 또한, 아이들이 원하는 진로를 파악한 후 직업교육으로 연결시켜 주는 등 전인적인 교육을 지향하며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최근에는 한국어 교육의 일환으로 성경쓰기와 독후감 쓰기 시간을 마련했다. 자연스럽게 종교교육을 병행하게 됐고, 초등학생 3~4명이 예비자교리를 받겠다며 찾아오기도 했다.
센터 사무국장 우현숙 수녀(원죄없으신마리아교육선교수녀회)는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한국사회의 훌륭한 인적자원”이라며 “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날 때 하느님 나라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년 간 우리드림센터를 운영해 온 교구 이주사목위는 그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계획을 꿈꾼다. 전인교육과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고, 다문화가정 학생들을 세계적인 인재로 양성할 수 있는 양질의 교육과 문화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위원회의 새로운 꿈이다.
최병조 신부(교구 이주사목위원장)는 “이제 나의 것과 우리 것만을 내세우며 살아가는 시대는 지났다”며 “우리도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의 이웃으로 다가오는 이주민에게 구체적으로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희망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원계좌 131-015-693575 신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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