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자들은 성·사랑·생명·가정에 관한 교회 가르침을 얼마나 이해하고 또 실천하는가. 교회는 각 가르침을 얼마나 효과적이며 적극적으로 전하고 있는가. 이에 관한 현실에는 여전히 적색 경고등이 켜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주교회의 산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는 최근 (주)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 설문조사를 의뢰, 신자와 비신자가 갖고 있는 생명과 가정에 관한 전반적인 인식을 확인하고 새로운 실천 방향 등을 제시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신자 과반수가 생명에 관한 교회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신자 중에서도 가족 모두가 신자이거나 신앙 활동을 활발히 펼칠 경우, 교회 가르침을 더욱 잘 실천하는 것으로 조사돼 ‘가정의 복음화’ 중요성을 다시금 환기시켰다. 신자들이 교회 가르침을 충분히 교육받지 못했다는 점도 이번 조사에서 주목해야할 결과다.
‘생명과 가정에 대한 설문조사’(2014)는 지난 6~7월 전국(제주 및 군종교구 제외) 15세 이상 가톨릭 신자와 비신자 각각 1000명씩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한국교회는 지난 2003년에도 전국 차원의 생명·가정 관련 의식 조사를 펼친 바 있다. 이번 조사는 2003년 조사와 비교해 지역별 ‘신자 비율’ 분포 차이를 고려했으며, 한국 사회 변화와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3차 임시총회 예비문서 설문 문항을 반영해 총 12개 문항을 추가한 것이 특징이다. 설문 항목은 크게 ▲가정생활 ▲혼인 ▲노인 문제 ▲청소년/ 자녀 교육 ▲생명 ▲성 ▲출산 /자녀관 ▲자살, 안락사, 사형 등 반생명적 행위 ▲신앙생활로 구분했다.
-가정 관련-
가정과 관련, 동거와 이혼 등에 대한 의식은 지난 2003년에 비해 교회 가르침과 더욱 멀어졌다.
우선 신자 중에서도 동거에 찬성하는 비율이 높았으며,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데 동의하는 수는 적었다. 신자 중 ‘결혼을 전제로 한 동거 생활’에 찬성한 비율은 61.1%,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은 동거 생활’에 찬성한 비율은 32.8%였다.
조건부 이혼에 대해서도 신자의 59.8%가, 비신자의 71.5%가 긍정했다.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는 응답도 늘어, 이혼 갈등을 겪는 신자 가정이 늘어남을 알 수 있다. 동성결합에 반대한다는 수는 신자 75.6%, 비신자 75.7%였다.
노인 문제에 관해서는 신자와 비신자 모두 절반 이상이 ‘자녀와 노부모가 따로 사는 것이 좋다’(신자 56.4%, 비신자 59.8%)로 인식하고 있으며, 청소년 탈선의 주원인으로 모두 ‘가정교육의 잘못’(신자 43.3%, 비신자 48.1%)을 꼽았다. 이어 청소년 탈선의 원인으로는 ‘사회적 환경의 문제’, ‘개인의 인성 문제’ 등이 제시됐다.
아울러 신자, 비신자 모두 가정에서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문제점을 ‘경제적 어려움’이라고 답했으며, 이어 ‘가족 간의 대화 부족과 무관심’, ‘자녀 교육 문제’ 등을 선택했다. 신자와 비신자 모두 10명 중 2명은 가족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하루 평균 10분 미만인 것으로 조사됐다.
-생명 관련-
우리 사회 생명경시풍조가 심각하다고 바라보는 시각은 신자, 비신자 모두에게서 나타났다. 생명 존엄성 회복 운동에 대해서는 종교 유무와 관계없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구체적으로 ‘생명 존엄성 회복 운동이 종교적 또는 사회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물음에 신자는 93.6%, 비신자는 90.1%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반면 생명과 관련한 교회 가르침을 마땅히 따라야 한다는 이들은 응답자의 35.3%에 불과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3명 중 2명 가량은 생명에 관한 교회 가르침에 대해 따르기 어렵거나 상황에 따라 결정할 것이라고 답했다. 교회 가르침 중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항목으로는 ‘인공피임 금지’(44.9%)가 꼽혔다. 인공피임을 반생명적이라고 판단하는 비율도 신자 32.2%, 비신자 24.8%에 불과했다. 시험관 아기 시술은 신자 중 절반 정도만이 반생명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 신자의 20.0%, 비신자의 28.6%가 낙태 경험이 있었으며, 태아에 이상이 있는 경우 ‘낳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신자 73.6%, 비신자 87.2%로 높았다.
혼전 성관계에 관해서는 신자와 비신자 모두 60% 이상이 ‘당사자끼리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혼전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신자 63.7%, 비신자 69.1%)고 답했다.
‘자식을 꼭 낳아야 한다’는 응답은 2003년 조사결과에 비해 약 10%정도 줄었으며, 신자와 비신자 모두 이상적인 자녀수보다 실제 계획하는 자녀수가 적은 이유로 ‘경제적 부담’을 지적했다.
또한 신자, 비신자 대다수가 안락사 법적 허용에도 찬성했으며, 두 부류 모두 10명 중 1명 정도는 ‘자살은 상황에 따라 할 수도 있다’고 응답했다.
-신앙생활 전반-
신자들 중에서도 생명이나 가정에 관해 교육받은 경험은 절반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가정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본당의 도움을 받은 경우는 16.3%에 불과했다. 반면 관련 교육을 받았던 이들은 대부분 ‘도움이 되었다’고 평했으며, 본당 가정 관련 프로그램 중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강론’이라고 답했다.
성사혼과 관면혼에 대해서는 신자들의 인지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 질문에 대한 응답자 중 31.5%는 사회혼만 했을 경우 고해성사와 영성체 등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2003년에 비해 성사혼은 31.2%에서 29.4%로, 관면혼은 22.8%에서 19.2%로 감소했으며, 사회혼은 45.9%에서 51.4%로 늘었다.
혼인 준비 교육 참가자는 2003년에 비해 10% 증가했다. 또 10년 전에는 ‘강좌 자체가 있는지 몰라서 수강하지 못했다’(55%)는 응답이 가장 많았지만 올해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41.8%)라는 답변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아울러 유아세례를 ‘꼭 받아야 한다’는 의견은 2003년 조사 대비 59.3%에서 48.6%로 낮아졌다.
-사목적 제언-
성·생명·사랑·가정은 교회의 핵심 사목 주제이다. 그러나 주교회의나 교구 차원의 소수 전문가들이 교육과 대외 활동 전반을 담당하는 상황에서는 구체적인 변화를 이끌기가 쉽지 않다.
이번 조사를 실시한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는 성·생명·사랑·가정에 관한 교회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이끌 디딤돌로 ‘가정 복음화’를 강조했다. 또 연구소는 가정과 생명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내실화하는 것은 물론, 각 본당에서 사제 강론을 적극 활용하고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특히 “앞으로 교회는 생명과 가정에 관해 원칙이나 의무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그 원칙이나 의무가 기반하고 있는 복음의 풍요로움에 대해 강조해 신자들이 기쁘고 복되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전했다.
정재우 신부(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소장)도 “성·생명·사랑·가정과 관련한 교회 가르침이 실천되지 않는 것이 바로 신앙의 위기”라며 “교회 가르침을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소개하고 설명해, 책임 있는 신앙인의 모습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를 위해 정재우 신부는 “가르칠 직무를 맡은 이들이 우선 깊이 공부하고 이해하고 납득하는 일이 필수적”이라며, “본당 사목자들이 성·생명·사랑·가정에 관한 교회 가르침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독려했다. 특히 평신도 전문가 양성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이 평신도들이 그들의 체험과 의식 등을 전할 수 있는 장을 폭넓게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신부는 또한 “본당 주일학교 시스템 등을 통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연령별 통합 교육, 부모를 위한 교육, 혼인과 가정 사목을 위한 신학적 연구 및 교육을 담당할 전문 기관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신자들은 가정 공동체 마련을 위해 교회에 바라는 사항으로 ▲다양한 가족 단위의 활동과 봉사를 제시했다. 이어 ▲가족 단위의 상담 프로그램과 ▲소공동체를 통한 가족 단위 활동 지원 ▲가족 단위의 신앙 증진 프로그램 ▲사제·수도자와의 만남 등의 도움을 바란다고 응답했다.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2014 생명과 가정’ 설문 - 한국갤럽 의뢰 신자·비신자 각 1000명 의식 조사
발행일2014-11-09 [제2918호, 1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