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 구원을 매개하는 성령의 활동
「아시아 교회」는 다종교 상황인 아시아의 문화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면서도, 복음의 핵심적 메시지가 결코 방법론적 차원에서 축소, 간과되어서는 안 됨을 강조한다. 즉,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보편성이 분명하게 천명되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이러한 유일한 ‘구원 중개’(medium of salvation)가 성령의 활동에 의해 다양하게 전달됨을 제시한다. “시간의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께서는 유일한 보편적 중개자이십니다. 비록 명시적으로 그분을 구세주로 믿는 신앙을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구원은 성령의 통교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으로서 오는 것입니다.”(14항)
이처럼 「아시아 교회」는 그리스도론적 성찰과 성령론적 성찰을 긴밀히 연결시켜 구원론적 주제를 전개시킨다. 신학적으로 볼 때, ‘성령의 보편적 현존과 활동’(the universal presence and activities of the Holy Spirit)이란 신학적 주제는 사실 아시아 신학에 매우 잘 적용될 수 있다. 아시아의 다양한 종교-문화 상황 속에 신비로이 현존하시며 사람들을 보편적 구원에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활동에 대한 성찰이 최근의 아시아 신학적 논의에서 많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아시아 교회」는 이러한 성령론적 성찰이 반드시 그리스도론적 중심성과 연결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즉, 성령의 활동을 논함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보편성을 간과, 경시해서는 안 된다. 이는 아시아 신학 일부의 과도한 ‘성령중심주의적’(pneumatocentric) 흐름을 경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요한 바오로 2세는 말한다. “성령의 보편적 현존은 예수 그리스도를 단 한 분이시며 유일하신 구세주로서 분명히 선포하는 일을 소홀하게 하는 변명에 사용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성령의 보편적 현존은 예수님 안에 있는 보편적 구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창조와 역사 안에서 성령의 현존은 예수 그리스도께 향하여 있으며, 그분 안에서 창조와 역사는 구속되며 성취됩니다. 강생 이전과 성령강림의 절정의 순간 모두, 성령의 현존과 활동은 언제나 예수님과 그분께서 가져오시는 구원이 목표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보편적 현존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하시는 성령의 활동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16항)
아시아 교회의 사명
그러므로 아시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중심성에 기초하여 성령의 신비로운 인도를 따라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고 투신해야 할 사명을 깨닫게 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제 아시아 교회가 그야말로 성령의 불길에 의해 타올라야 함을 강조한다. “교회는 성령의 촉구에 순종할 때에만 자기 사명을 수행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구체적 상황들 안에서 성령의 활동에 대한 진정한 표지와 도구가 되도록 부름 받은 교회는 대륙의 다양한 상황들 안에서 새롭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구세주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도록 하시는 성령의 호소를 식별하여야만 합니다.”(18항)
사실, 이는 오늘의 한국 교회를 위해서도 매우 의미 있는 진술이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며 아시아의 상황 속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증언해야 할 사명을 우리 모두 되새겨야 한다.
▲ 1986년 인도 실롱을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환영하며 춤을 추고 있는 지역 젊은이들. CNS 자료사진
복음 선포를 위한 교육학적 방법
「아시아 교회」는 다종교문화의 아시아 상황에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효과적으로 선포할 것인가를 설명한다.
여기서는 너무 일방적으로 직접적이며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선포 방법보다는, 아시아의 문화를 고려하고 존중하며 점진적으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시키고 알려나가는 ‘교육학적 방법’(pedagogy)이 그 핵심 개념으로 제시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세주로 소개하는 일은 사람들이 점차 그 신비가 완전히 자기 것이 되게 하는 교육학적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비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첫 복음화 과정과 신앙인들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선포하는 방법이 다른 접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명확한 일입니다. 첫 복음화에서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개는 아시아 민족들의 신화와 민속에서 표현된 열망들의 성취로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아시아 문화 형태에 친숙한 이야기 식 방법들을 택하여야 합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선포는 복음서처럼 그분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소개하는 데 언제나 전제되고 표현되어야 하는 관련된 존재론적 개념들은 더욱 설화적이고 역사적이고 심지어 우주적인 전망을 통하여 보완될 수 있습니다. 주교대의원회의 교부들이 강조한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얼굴이 아시아에서 제시될 수 있는 새롭고 놀라운 방법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20항)
아시아 복음화 위한 신비적 차원 접근
아시아 교회의 복음 선포 사명을 이해하기 위해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바로 ‘신비적’ 측면의 접근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지혜(wisdom) 전통의 세계 종교들이 자리한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교 신비사상의 재발견을 위한 노력이 오늘날의 ‘새로운 복음화’ 작업에로 어떻게 연결되고 효과적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말한다. 즉, “신비주의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위대한 전통들의 활력성에 대하여 증언함으로써 종교 간 대화에 매우 중요하게 이바지할 수”(31항)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시아의 선교를 위해 관상의 중요성이 제시된다. “선교는 관상적인 활동인 동시에 활동적인 관상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관상 중에 하느님께 대한 깊은 체험을 하지 못한 선교사는 영적인 영향력이나 선교적 성공이 그다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다른 곳에서 기술한 바 있지만, 저의 고유한 사제적 체험에서 얻은 통찰이며, 비그리스도교적 영적 전통을 지닌 대표자들, 특히 아시아의 대표자들과 나눈 만남은 선교의 미래가 관상(contemplation)에 크게 달려 있다는 확신을 굳게 해 주었습니다. 개인과 민족들 전체가 신적인 것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 대종교들의 고향인 아시아에서, 교회는 긴박한 인간적, 사회적 관심사에 투신할 때에도 영적으로 깊은 기도하는 교회가 되도록 부름 받은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기도와 관상으로 이루어진 참된 선교 영성이 필요합니다. 진실로 종교적인 사람은 아시아에서 깊은 존경과 따름을 받게 됩니다.”(23항)
친교의 신학
「아시아 교회」 제5장은 ‘선교를 위한 친교와 대화’라는 제목으로,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친교의 신학을 제시한다. 이는 소수의 아시아 교회가 당면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아시아 복음화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를 매우 잘 설명한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여기에서 제시하는 핵심 개념은 친교와 일치, 그리고 대화를 통한 복음화의 길이며, 바로 이러한 복음화 작업이 아시아 대륙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 제시된다. 우리가 예수님과 나누는 친교와 일치로부터 출발하여,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친교, 그리고 다른 모든 이와의 대화와 친교를 지향해 나아가는 것이 곧 아시아 복음화의 길이다.
“친교와 선교는 서로 불가분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친교와 선교는 서로 깊숙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 상호 작용을 하며 서로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친교는 선교의 원천이고 결실이며, 친교는 선교적이고 선교는 친교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친교의 신학을 사용하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를 모든 사람이 어떻게든 관련되어 있는 하느님의 백성인 순례자로 묘사할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민족, 문화, 그리고 종교들 속에서 친교로서 교회의 삶은 더 큰 중요성을 띠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치에 대한 교회의 봉사는 아시아에서는 특별한 관심사입니다. 왜냐하면 아시아는 윤리, 사회, 문화, 언어, 경제 그리고 종교적인 차이들에서 일어나는 긴장과 분열 그리고 갈등이 있는 곳이기에 그러합니다.”(24항)
{{img2}}박준양 신부는 1992년 사제로 서품,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교의신학 전공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의신학 교수로 봉직하고 있는 박준양 신부는 신학과사상학회 편집위원장 및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총무,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 위원, FABC 신학위원회 전문신학위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