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첫 서리가 내린 10월 28일,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정세덕 신부)는 후원회원 등 신자 132명과 함께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 일대로 ‘평화를 찾아 떠나는 DMZ 기차여행’을 다녀왔다.
이산가족과 한국전쟁 참전용사도 함께 몸을 실은 ‘DMZ 트레인’은 오전 9시 정각 서울역을 출발했다. 기차 안에서 마이크를 잡은 정세덕 신부는 “DMZ 기차여행은 단순한 여행이나 놀이가 아니라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과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고 또한 우리가 만나지 못하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떠올리면서 하느님 안에서 사는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전 11시7분 신탄리역에 도착한 신자들은 버스로 갈아타고 ‘노동당사’(등록문화재 제22호)로 이동했다. 차창 밖으로는 북녘땅이 바라다 보이고 도로 옆에는 ‘지뢰’ 표지가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노동당사는 남북분단의 생생한 현장인 철원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히는 곳. 노동당사가 위치한 지역은 해방 후 한국전쟁 전까지 북한에 속했다가 휴전이 되면서 남한 영토가 된 곳이다. 38선 이북의 공산화에 따라 1946년 초에 지어진 노동당사는 한국전쟁 때 생긴 무수한 총탄 자국이 60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선명하다.
노동당사를 떠난 버스는 헌병을 동승시킨 채 민통선을 지나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등록문화재 제112호)으로 향했다. 금강산까지 달렸던 철길이 철원에서 끊어졌다. 철도 교량에는 ‘끊어진 철길! 금강산 90키로’라는 큼지막한 문구가 새겨져 있어 지척의 금강산에 가지 못하는 서글픔을 느끼게 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백마고지 전적지. 1952년 10월 열흘 사이에 고지 주인이 24번 바뀌고 중공군 사상자만 1만4000명에 이른다는 비극의 현장이다. 백마고지를 힘겨운 걸음으로 걷던 김관섭(안드레아·84·서울 공항동본당)씨는 60년도 더 된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렸다. “고향이 평양이에요. 6·25때 미군 3사단 수색대에 배속돼 참전했어요. 전쟁 끝나고도 2년 더 군대에 있다 제대했는데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오후 4시15분 신탄리역을 떠난 ‘DMZ 트레인’은 6시30분 해가 진 서울역에 멈췄다. ‘DMZ 트레인’이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을 다시 건널 날은 언제일까.
서울 민화위 ‘평화 찾아 떠나는 DMZ 기차여행’
끊어진 철길 너머 북녘 땅 바라보며 평화 염원
발행일2014-11-16 [제2919호, 6면]
▲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평화를 찾아 떠나는 DMZ 기차여행’ 참가자들이 남북분단의 상징 철원 노동당사 앞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