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주교교류모임’은 한국의 이문희 대주교와 일본의 고(故) 하마오 후미오 추기경이 지난 1995년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제6차 정기총회에서 만나 의견을 나누면서 현실화됐다. 특히 양국 주교들은 공통의 역사 인식을 계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교회로 나아가자는 취지에서 이 모임을 시작했다.
첫 모임은 1996년 ‘한일 교과서 문제 간담회’로 진행됐다. 곧이어 주교들은 지속적인 소모임을 활성화와 역사 공부 세미나 마련 등을 결의했으며, 2004년 제10회 모임을 통해서는 「한국과 일본에서 함께 읽는 열린 한국사」(솔출판사)를 펴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 책은 한글과 일본어로 동시에 발행해 한일 청소년 역사 부교재로 배포한 바 있다.
‘한일주교교류모임’은 5명의 주교가 1996년 첫 모임을 가진 이듬해부터 양국을 오가며 열고 있다. 규모도 급속도로 확대돼 이제는 해마다 양국 주교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이끌어가는 모임으로 자리 잡았다.
‘한일주교교류모임’ 한국 측 책임을 맡고 있는 이기헌 주교(의정부교구장)는 이 모임의 가장 큰 결실로 양국 주교들 사이에 다져진 신뢰와 형제애를 꼽았다. 모임에 참가하는 주교들도 이러한 형제적 친교 안에서 국가 간 갈등과 상처의 골을 넘어 그리스도적 시선으로 화해를 실현하는데 힘을 실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모임 의제를 각종 사목 교류와 사회 문제에 관한 대응 등으로 확대해온 것도 큰 성과다. 그동안 주교들은 사제 양성과 순교사 공유를 비롯해 이주민 문제, 자살, 핵 문제 등 다양한 주제로 모임을 진행, 양국 그리스도인들이 당면하고 있는 사회문제와 사목문제를 폭넓게 다루면서 교회가 실질적으로 해야 할 역할을 모색해왔다. 나아가 한일 청년 교류와 수도자들의 대화, 양국 교구 간 자매결연 등을 통해 친교와 사목적 협력의 폭을 넓혀왔다.
한편 양국 주교들은 올해 모임 일정 중에는 ‘역대 교황들의 평화에 대한 가르침’과 ‘동아시아 평화 과제와 문제점에 관하여’ 주제발표를 듣고 관련 토의에 나섰다. 각 주제발표는 유경촌 주교(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 교구장 대리)와 나카노 고이치 일본 상지대학 교수가 맡았다.
특히 양국 주교들은 모임 공식 일정에 앞선 10일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나눔의 집’을, 11일에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 등을 찾아 일본 역사의식의 문제점을 환기하고 바로잡아나갈 뜻을 다졌다.
일본 측 책임을 맡고 있는 마쓰우라 고로 주교(오사카대교구 보좌주교)는 나눔의 집 방문 중 피해 할머니들에게 “일본 안에서도 역사를 올바로 알고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인식도 고쳐나갈 수 있도록 각자의 사목현장 등에서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또 12일에는 오두산 통일전망대와 의정부교구 참회와속죄의성당, 민족화해센터 등도 돌아보고, 북한이탈주민과의 대화를 통해 북한의 신앙 실태에 관해 열띤 질의를 펼치기도 했다. 이어 주교들은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공동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13일 공동성명서 발표를 끝으로 제20회 모임의 막을 내렸다.
염수정 추기경(서울대교구장)은 12일 미사 강론을 통해 안중근 의사가 집필한 동양평화론의 의미 등을 환기하고, “평화는 공동선의 실천을 바탕으로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염 추기경은 “우리가 모범으로 따르고자 하는 성인들은 이기심에서 비롯한 세상 욕심에서 벗어남으로써 하느님 안에서 참 평화를 누린 분들임을 기억하자”고 당부했다. <주정아 기자>
▲ 11월 11일 한일주교교류모임 개막.
▲ 11일 안중근 의사 기념관 방문.
▲ 12일 명동대성당에서 미사 봉헌.
■ 일본 주교회의 의장 오카다 대주교
“일본 청소년들에게도 올바른 역사 가르쳐야”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를 돌아보면 항상 마음이 아픕니다. 이번 안중근의사기념관 방문 등에서 큰 깨달음을 얻고 갑니다. 일본 청소년들에게도 올바른 역사를 가르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일주교교류모임의 첫 모임부터 지금까지 함께해온 일본 주교회의 의장 오카다 다케오 대주교(도쿄대교구장)는 “주교로서,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들로서 역사에 대한 공동의 책임의식을 갖고 시작된 교류모임을 통해 먼 나라였던 양국이 가까워졌다”며 20회에 이르는 모임을 지켜본 소회를 전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모임은 양국 역사교육의 현실을 다룬 두 번째 모임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역사를 상세히 가르치는 반면, 일본의 아이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그 모임에서 알게 됐습니다.”
첫 모임은 이문희 대주교가 후에 추기경이 된 일본 하마오 후미오 주교에게 보낸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됐다. “양국이 공통된 역사 인식을 가지기 위해 주교들이 협력하자”는 제안이었다. 오카다 대주교는 “역사 문제는 예민하고 어려웠다”면서 “일본이 침략한 역사에 ‘죄송하다’고 사과하자 한국 주교님들이 ‘이미 사과했으니 됐다’며 ‘양국 교회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나 과제’에 관해 이야기하자고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한일 주교들은 이번 모임에서 오두산 통일전망대와 참회와 속죄의 성당, 안중근의사기념관 등을 방문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북한이탈주민을 만나는 등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 얽힌 여러 모습을 직접 마주했다.
오카다 대주교는 “일본의 젊은이들은 한국과 전혀 다른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면서 “앞으로 젊은이들의 교류와 만남으로 서로의 역사를 알고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과 일본의 주교가 만나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소중한 일입니다. 양국은 같은 동아시아의 나라로 자살, 인권, 빈부격차 등 비슷한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이 협력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 나라 도래로 이어지길 기도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도 기도 부탁드립니다.” <이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