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칙의 서론에서 “주님께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고 하신 약속의 항구한 성취를 교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기쁘게 체험하지만, 특히 빵과 포도주가 주님의 몸과 피로 변하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주님의 현존을 강하게 체험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모든 교우들이 이런 주님의 현존을 의식하고 체험하고 있는 지 의문이 간다. 왜냐하면 한국천주교회는 교우수가 계속해서 증가를 하지만 그것 보다 더 많은 쉬는 신자들이 생겨서 주일미사 참례자는 2013년 전체 신자수의 21.2%(2013년)에 불과하다. 곧 세례 받은 교우들의 다섯 중에 한 사람만이 실질적인 신앙생활을 한다는 의미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교회를 세우고 양육하며 종말론적 희망으로 나아가게 하는 성체성사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주님을 만나면 우리는 변한다. 이 회칙은 성체성사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만날 수 있는 여정을 가르쳐준다.
앞으로 2회에 걸쳐서 서론과 6장으로 구성된 본론, 그리고 결론으로 이루어진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내용들을 간추려서 설명을 하겠다. 현존하시는 주님이 가장 잘 드러나고 그분을 만나는 체험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성체성사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능동적인 참여를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되리라 여겨진다.
1. 파스카 신비에서 태어난 교회
교회의 원천이 어디부터인지, 또한 누구에 의해서 시작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첫 걸음이다. 200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교회는 자신의 기원과 사명을 성체성사를 거행하면서 계속해서 확인해왔다.
이러한 과정의 결실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령의 감도하심과 오랜 신학적 통찰력으로 성체성사가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교회헌장 11항)이라고 하며 교회의 모든 영적 선인 “살아있는 빵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계심을 올바르게 선포했다. 교회의 시작이 성체성사의 제정과 연결되어 있음을 회칙은 강조하고 있다.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만찬을 주례하시며 빵을 들고 쪼개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마태 26,26 루카 22,19 1코린 11,24 참조)하고 잔을 들어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마르 14,24 루카 22,20 1코린 11,25 참조)하고 말씀하셨으며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1코린 11,25)고 명하심으로써 교회는 예수님께서 행하는 것을 기본적인 사명으로 여기며 수행해왔다(회칙 2항 참조).
주님의 구원신비들은 전례, 특히 성삼일 전례 안에서 선포되며 기억된다. 그래서 과거에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현실이 바로 현재의 교회 안에서 실재가 되어 나타난다. 성체성사 안에서 사제가 “신앙의 신비여!”라고 하면, 교우들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라고 응답하면서 교회는 자신의 토대와 근원이 바로 “파스카 성삼일 전체”라고 증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교회에 성체성사를 주심으로써 교회에 파스카 신비가 영원히 현존하도록 하셨다”(회칙 5항).
2. 그리스도의 얼굴 바라보기의 절정은 바로 성체성사
대희년의 유산으로 교회에 「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eunte, 2001)와 성모님께 관한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Rosarium Virginis Mariae, 2002)와 연결된 ‘그리스도의 얼굴 바라보기’를 주제로 교회의 다양한 측면들을 더욱 심화시키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며 제삼천년기를 맞이한 교회가 새복음화의 열정으로 역사의 바다에 깊이 뛰어들도록 권고하는 요한 바오로 2세의 계획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분께서 여러 현존 양식으로, 특히 당신의 몸과 피의 살아 있는 성사로써 당신을 드러내실 때마다 그분을 알아볼 수 있다”는(회칙 6항) 말이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가 겪었던 체험을 교회가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다”(루카 24, 31). 예수님을 알아보는 데 있어서 ‘빵 쪼갬’ 예식으로 초기교회에 불려졌던 성찬례 만큼 좋은 곳이 없다는 것을 교회는 재확인하고 있다.
▲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2000년 6월 18일 제47차 로마 세계성체대회 개막식에서 성체현시를 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CNS 자료사진)
3. 주님의 현존의 잔치인 성체성사의 의미를 모호하게 하거나 평가절하하는 행위들에 대한 우려
회칙의 서론 마지막에 성체성사에 대한 우려가 되는 여러 상황들에 대한 서술이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성체 조배 관습이 거의 사라지고 있습니다. 또 교회의 여러 지역에서는 이 놀라운 성사에 관한 가톨릭 교리와 건전한 신앙에 혼란이 생기는 폐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성체성사의 신비를 극단적으로 축소하여 이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사도직 계승에 바탕을 둔 직무 사제직의 필요성이 때때로 흐려지고, 성찬례의 성사적 본질이 일종의 선포 형식이라는 단순 효과로 축소되기도 합니다.”(회칙 10항).
교황님은 이러한 현상의 결과로 교회의 신앙 표현 원리에 어긋나는 성찬 관습에 빠져 드는 초교파적 행위들이 생겨남에 대한 깊은 슬픔을 느끼며 성체성사의 큰 은총에 대한 모호성이나 평가절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합니다. 그러면서 회칙이 “용인할 수 없는 교리와 관습의 어두운 구름을 걷어 내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 성체성사가 그 찬란한 신비로 끊임없이 빛나기를 바랍니다”(회칙 10항)라고 하면서 회칙의 목적을 설명한다.
4. ‘신앙의 신비’(Mysterium fidei)는 과거의 사건이 아닌 현재의 사건
회칙은 성체성사가 의미로만 구원의 사건 재현이 아니라 과거의 사건을 기억(anamnesis)을 통해 현재로 불러오는 ‘오늘’(hodie)의 사건임을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마치 그 자리에 함께했던 것처럼 당신의 희생 제사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인 성체성사를 남겨 주신 다음에야 십자가 희생 제사를 바치시고 성부께 되돌아가셨다(회칙 11항 참조).
부활로 정점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미사에서 성사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실체 변화라는 매우 특별한 현존과 관계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의심 없이 총체적으로 또 온전하게 하느님이며 인간으로서 현존하시게 되는 곧 본체적인 현존 방식”이다.(바오로 6세, 「신앙의 신비」 39항).
희생 제사의 구원의 힘은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영성체에서 완전하게 실현되며 이는 신자들과 그리스도의 내밀한 결합을 지향한다. 물론 이는 강생의 신비 때 함께 했으며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한 성령의 내림으로 가능해진다.
영성체와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교우들은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1)에 대한 종말론적 희망을 지니면서 가장 약하고 가장 힘없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희망을 거의 잃어버린 듯한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희망을 전하고 복음에 따라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1코린 11,26) 계속 이어가야 한다(회칙 20항 참조).
윤종식 신부는 의정부교구 소속으로, 1995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로마 교황청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전례학을 가르치면서,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