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성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부터 우리는 새롭게 대림시기를 시작합니다. 대림은 말 그대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것에 대한 기다림을 의미합니다. 복음을 통해 우리를 초대하는 말씀은 “깨어 있어라”입니다.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 주인이 언제올지 모르니 ‘항상 준비하고 깨어 있으라’는 권고가 오늘 복음이 전해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복음이 전해주는 비유는 간단합니다. 주인은 먼 길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고, 특별히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당부합니다. 이 짧은 비유에서 문지기의 역할과 임무는 가장 중요해 보입니다. 흔히 집은 공동체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모든 구성원에게 권한을 주고, 책임을 맡겼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가 어느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라면, 그것이 가정이건, 교회이건, 우리 각자에게는 맡겨진 권한과 책임이, 곧 소명이 있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 문지기의 소명은 당연 깨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지기에게 맡겨진 소명은 그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어느 한 사람 만이 아니라 모두가 깨어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2독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을 위해 주님께서 도와주신다고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떠한 은사도 부족함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비단 코린토 신자들만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는 어떤 부족함도 없습니다. 은사는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소명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는 필요한 은사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삶의 무게가 가끔은 우리를 힘들고 지치게 할지 모르지만, 주님은 그것을 이겨나갈 힘을 부족함 없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때로 절망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우리를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은총이 부족하다’고 말하기 전에 나는 주어진 은총을 충분히 깨닫고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제1독서 역시 기다림을 주제로 합니다. “아, 당신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신다면!”이라는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나타나실 것에 대한 간절함을 잘 표현해 줍니다. 믿음을 찾아볼 수 없는 세대에 대한 탄식과 안타까움이 배여있는 이사야서의 말씀은 자연스레 시간을 넘어 지금의 우리를 생각하게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 해도, 그리고 사람들이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잃었다 해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우리 모두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창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 당신은 저희 아버지이십니다. 저희는 진흙, 당신은 저희를 빚으신 분, 저희는 모두 당신 손의 작품입니다.”
언제부터인지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시기는 차분하고 조용하기 보다는 연말의 분위기와 함께 상술에 휘둘리고 들떠있어 보입니다. 축제의 분위기가 물론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탄생이 주는 의미는 별로 생각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과 “깨어 있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차이가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나에게 주어진 소명에 충실하고 그 소명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 성탄을 기쁘게 준비하면서도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에 감사하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서로 함께 친교를 맺을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깨어 있음’의 의미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셨습니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이태리 로마 성서대학(Pontificio Istituto Biblico) 성서학 석사학위를,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에서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성서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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