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미회는 상대방 여자와 손을 맞잡는 순간、이크 이게 아닌데、하고 속으로 외쳤다.
여자의 손은 뜨끈했고 힘있고 거칠게 매디가 굵어 감촉만으로도 막일에 이골난 손임이 짐작되었다.
그손에 비하면 미회의 것은 느른한 명줏발처럼 맥없이 나약하여 흡사 상대방 손아귀에 움짓못하도록 잡혀있는 꼴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성급했지.
미희는 아까 동사무소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맞은편에서 기옥과 주거니 받거니 걸어오는 뚱뚱한 중년 여인의 걸음걸이에 눈길이 멎었었다.
가슴을 뒤로 젖히고 흡사 임부처럼 걷는 걸음걸이가 낯설지 않았다. 그리고는 그들과의 거리가 좀더 당겨졌을때 여인의 넓직한 이마 위에서 물결 모양으로 구비친 머리칼의 모양이 눈익은 것이었고 가느다란 눈썹과 물기 흠뻑한 맥없이 크고 검은 눈동자만으로 미회는 그녀를 속단하곤 달겨든 것이다.
그런데 막상 지척에서 맞쳐다보는 여자의 얼굴에는 미회의 기억속 인물의 결이 고운 흰살갗 대신에 주독이 올라 있는듯 거칠고 푸르딩딩 검붉은 낯빛과 살갗으로도 그렇지만 이생판 낯선손의 감촉으로 본대도 틀림없이 이 여자는 그녀가 아니다.
그녀 손의 감촉은 남유달리 색달아서 아직도 미회의 손바닥에는 그녀의 매끌매끌 걷잡을 수 없던 손이 감촉이 되살아 난다.
그손은 야실야실 매끈거리는 다섯 마리의 뱅어를 붙여놓은 것 같았다. 희고 차고 날렵한 그녀의 손가락을 미회는 때때로 마주 잡을 때가 있었다. 그손을 장난감처럼 주물럭거리다가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뱅어같이 다섯 개의 손가락이 유연히 감겨올라치면 미회는 곧잘 그손을 매정스레 뿌리치곤 했었다.
그런 손이 그래 제아무리 세상 풍파를 모질게 헤쳐 왔기로니、그리고 그 사이에는 만 30년이란 엄청난 길이의 시간의 강물이 가로질러 흐고 있다기로니 이렇듯 본바탕 감촉까지 바뀌어지는 법이란 없으리.
『이게 누구유? 대관절 이게 몇 년만이지?』
여자의 입에서 먼저 놀라며 탄복하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자 미회도 이제는 이여자가 영낙없는 그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스공!』
미회 입에서도 여자의 과거 호칭이 제풀로 튀어나온다.
『어머나 이분이 바로 그 미스공이셔?』
기옥이가 곁에서 냉큼 뛰어들며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여자의 아래위를 무례하지 않을만큼 훑어보았다. 기옥이도 미회에게<미스공>의 이름을 듣고 있었다.
『그래요、이래뵈두 저도 전에는 날씬한 미스 공이였지요、많이도 변해서 몰라볼 줄 알았는데 그래도 용케 알아주니 고맙지 뭐야. 미회씬 하나도 변하지 않았군. 어쩜 옛날 그대로이지? 앞의 말은 기옥에게 뒤의 말은 미회에게 하면서 잠시 꿈꾸듯한 눈길이 된다.
미회 눈앞에 기옥이 오빠가 소개해주던 발랄한 군복차람의 미스공의 모습이 산뜻하게 떠오른다.
1ㆍ4후퇴 당시 피난지 대구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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