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가 극찬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시대 예술작품 ‘천국의 문’(Porta del Paradiso)이 한국-이탈리아 수교 130주년을 맞아 한국에 왔다. ‘천국의 문’은 바티칸미술관이 소장한 진품 성화들과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 박물관이 공개하는 르네상스시대 조각·부조·성물 90여점과 함께 1월 4일까지 서울 경복궁 고궁박물관 지하1층 특별전시실에서 전시된다. 본지는 이와 관련, 정웅모 신부(서울 장안동본당 주임)의 ‘천국의 문’에 대한 글을 2회 연재하고, 가톨릭 예술의 진수로 꼽히는 진귀한 작품 및 전시의 가치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세상 어디에 가면 천국에나 있을 것 같은 아름다운 문을 볼 수 있을까? 르네상스의 고향, 이탈리아 피렌체에 가면 아름다운 미술 작품을 많이 볼 수 있다. 피렌체 중심에는 성모 마리아께 봉헌된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Santa Maria del Fiore) 대성당이 있고, 그 앞에는 성 세례자 요한 세례당이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천국의 문’을 볼 수 있다.
구약의 주요 장면들 눈앞에서 생생하게
사람들은 거대한 대성당보다 팔각형으로 만들어진 세례당과 그 문 주위에 장사진을 친다. 팔각형 모양은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새로운 날을 시작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세례당 안으로 들어가면 천장과 둘레는 온통 황금빛 모자이크로 장식돼 있고, 정면에는 최후심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보인다.
세례당의 외부 형태나 내부 모자이크도 뛰어나지만 으뜸은 동문이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이 동문을 직접 보기 위해서 기꺼이 피렌체를 찾는다. 이 문은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인 기베르티(Lorenzo Ghiberti, 1378-1455)가 만든 것으로 구약의 주요 장면을 담고 있다. ‘아담과 하와의 창조’, ‘카인과 아벨’, ‘노아와 그의 가족’, ‘아브라함의 제사’, ‘에사오와 야곱’, ‘요셉과 그 형제들’, ‘모세와 율법’, ‘여호수아가 약속의 땅에 입성’, ‘다윗과 골리앗’, ‘솔로몬과 스바 여왕’의 장면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펼쳐진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는 이 작품을 바라보면서 “천국의 문으로 사용해도 부족함이 없을 작품”이라고 극찬함으로써 ‘천국의 문’으로 불리게 되었다. 미켈란젤로가 붙인 이 이름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세례당에서 이루어지는 세례성사의 의미를 잘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세례성사를 받음으로써 몸은 비록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천상에 속한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성 세례자 요한 세례당뿐만 아니라 14세기에 건립된 대성당의 종탑 벽면에도 26개의 성경이나 일상 생활을 묘사한 부조들이 장식되어 있다. 성경은 곧 하느님의 이야기이면서 또한 하느님과 관계 맺고 있는 인간의 이야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담의 창조’, ‘하와의 창조’, ‘노동하는 아담과 하와’, ‘천을 만드는 여인’, ‘대장장이’ 등의 모습이 매우 친숙하게 묘사되어 있다. 특히 ‘아담의 창조’에는 고개 숙여 아담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 넣는 하느님의 모습이 정겹게 묘사되어 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소중히 빚고 생명을 불어 넣어 주셨는지를 잘 보여준다.
구약의 수많은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충실히 전해 주었다. 그들은 온 마음을 다해 하느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 뜻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다. 그 가운데서 도나텔로(Donatello, 1386년경-1466)는 하늘 높은 곳을 바라보는 ‘예언자’를 제작했다.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하늘을 응시하는 그의 눈은 살아있는 것처럼 빛난다. 세례자 요한은 구세주의 탄생이 임박했음을 알리면서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 세례자 요한의 겸손한 모습이 게르치노(Guercino, 1591-1666)가 그린 ‘기도하는 세례자 요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상 구원 위해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때가 되자 하느님이신 분이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탄생하셨다. 아기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우리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이었다. 포티나리(Pagno di Lapo Portinari, 1408-1470)는 단아한 모습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만들었다. 성모 마리아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는 한 손으로 사람들을 축복해 주며 다른 손에는 사과를 들고 있다. 이 사과는 아담과 하와가 따 먹은 금단의 열매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들의 죄악으로 이 세상에 죽음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아담인 아기 예수의 탄생으로 인간에게 죽음을 극복하고 새로운 생명이 들어오게 되었음을 알려 준다.
복음사가들은 예수님과 관련된 내용을 집필하며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전해 주었다. 귀도 레니(Guido Reni, 1575-1642)는 어린 천사를 바라보며 말씀을 받아 적는 ‘성 마태오와 천사’를 제작했다. 마태오의 얼굴과 손은 투박하지만 천사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맑게 빛난다. 그는 천사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그를 통해서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충실히 책에 기록하고 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에게 한 순간에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한 평생 동안 한결같이 드러난다는 것을 알려준다. 특히 마소 디 반코(Maso di Banco, 1335-1350년 활동)가 만든 ‘성체성사’를 보면 하느님의 은총없이 우리는 한 순간도 온전히 삶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랑나눔 있는 자리에 이미 천국의 문은…
이 세상 어디에 가면 천국에나 있을 것 같은 아름다운 문을 볼 수 있을까? 이미 미켈란젤로가 말한 것처럼 피렌체 성 세례자 요한 세례당에서 우리는 ‘천국의 문’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미술 작품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제 우리 주변에서 천국에 이르는 문을 발견할 수 없을까? 생각해 보면 천국에 이를 수 있는 문은 우리 주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 말씀을 따라 서로가 서로를 귀하게 여겨 품어 주고 사랑하면 바로 그 자리에 천국에 이르는 문이 열려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기베르티(Lorenzo Ghiberti, 1378-1455)가 제작한 ‘천국의 문’을 바라보면서 이제 나는 내 주변에 있는 수많은 천국의 문을 다시 찾아보게 된다.
정웅모 신부(서울 장안동본당 주임)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