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잎 두 잎 바람에 흩날리지 않는다. 꽃송이째 툭 떨어져 내린다. 활짝 핀 꽃잎, 붉디붉은 싱그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지는 동백꽃 모습이다.
이해인 수녀(클라우디아·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는 필 때 못지 않게 질 때도 아름다운 동백꽃 같은 삶을 꿈꿔왔다. 지난 주 출간한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1만 2500원 / 마음산책)은 그 꿈의 단편을 엿보게 하는 시집이다.
“인생의 겨울에도 추위를 타지 않고 밝고 환하게 웃을 줄 아는 명랑하고 씩씩한 동백꽃 수녀가 되어 이 남쪽 바닷가에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 맑은 감성 안에서 희망웃음이 피어나는지, 웃음의 힘으로 말간 얼굴의 시어들을 쏟아내는지 그 순서는 명확치 않다. 그저 이 수녀를 떠올리면, 누구든 기쁨과 감사의 언어, 변함없는 위로와 사랑의 마음을 느껴볼 수 있다.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에는 이 수녀 특유의 단정한 언어로 하느님과 사람에 대한 따스한 사랑을 읊은 시 100편, 지난 4년의 생활을 담은 짧은 일기글 100편을 실었다. 항암 투병기를 담은 시집 「희망은 깨어 있네」(2010년)를 낸 지 4년 만에 선보인 신작들이다.
새 시집 첫 장에서는 이 수녀가 전하는 ‘기쁨의 맛’을 볼 수 있다. 시인은 눈을 들면 보이는 구름 한 점, 흔한 꽃잎 한 장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그 위에 기쁨과 감사의 이름을 붙인다.
일상에서의 소소한 기쁨뿐 아니라 암투병의 고통을 절절하게 담으며 이 수녀는 말한다. “하루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지만, 죽음을 묵상하는 건 삶을 아름답고 간절하고 뜨겁게 하는 계기가 된다”고.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바치는 시, 스스로 생을 포기한 독자들에게 전하는 시 등을 비롯해 ‘한 송이 꽃이 돼 하느님 나라에 도착하고 싶다’(‘마지막 편지’ 중)는 편지도, 손으로 꾹꾹 눌러쓴 유언장을 쓴 날의 소회도 모두 풀어냈다. ‘기쁨의 맛’, ‘수도원의 아침 식탁’, ‘햇빛 일기’, ‘슬픈 날의 일기’, ‘너도 아프니?’, ‘시로 쓴 편지’, ‘시를 꽃피운 일상의 선물’ 등 총 7부로 구성한 시집이다.
특히 마지막 장에서는 2011년 1월 1일부터 2014년 10월 30일까지 쓴 일기 중 100편을 골라 담았다. 꾸밈없이 드러낸 내면의 글은 시보다 더 시같은 울림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지난해 3월에 쓴 일기에는 “시 전집 총 목차를 대충 세어보니 시가 900~1000편 사이 되는 것 같았다. 지난 30여 년간 퍽도 많은 노래들을 가슴 속에서 뽑아낸 나”라고 써 있다.
수도의 길에 들어선 지 50년, 그중 40여 년간 시인으로 불렸고 이 수녀의 말처럼 수많은 노래들로 보는 이들 듣는 이들과 마음을 나눴다. 질곡의 시간들도 많았고 병마의 무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하느님 보시기 좋은 어린 아이같은 웃음이 가득할 뿐이다.
그리고 칠순의 시인 수녀는 “나 자신이 온전한 침묵으로 / 스러질 때까지 / 나는 더 당신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침묵 연가’ 중)라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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