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본업’은 교정사목입니다”라고 말하는 서희(모니카·30)씨는 올해 3월 법무부 최연소 교정위원이 됐다. 보통 40~50대 남성이 다수를 이루는 법무부 교정위원에 서희씨가 최연소로 임명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남성 교정위원들은 “이제 겨우 서른 살 여자가 교정위원이라니…”라며 볼멘소리를 내기도 했다.
법무부 최연소 여성 교정위원
나이는 서른이지만 서 위원의 교정사목 경력은 11년이나 된다. 열아홉 살 때인 2003년, 교정사목에 첫 발을 내디뎠다. 10년 넘게 교정사목에 투신해 온 서 위원이 자신의 본업이 교정사목이라고 굳이 밝히는 이유는 본업보다 ‘부업’으로 자주 화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의 부업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을 뿐 아니라 필리핀에도 분원을 연 인천 화수동의 민들레국수집이다.
“딸이 대를 이어서 교정사목을 하고 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서영남(베드로·60) 대표의 말처럼 서 위원이 교정사목에 투신하게 된 것은 아버지 서 대표와 어머니 강 베로니카(56)씨가 교정사목을 ‘가업’으로 여기는 덕분이다. 서 대표가 교정사목 경력 30년, 강 베로니카씨가 20년, 서 위원이 11년이다. 합치면 61년이나 된다. 가업이라는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듯하다.
“저의 본업은 교정사목입니다”라는 서 위원의 말 역시 아버지 서 대표가 자주 하던 말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수많은 신문과 방송 그리고 몇 권의 책을 통해 민들레국수집 대표로 소개돼 온 서 대표는 언론에 노출될 때면 “저의 본업은 교정사목입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부모님 ‘교도소 신혼여행’에 동행하며 교정사목 첫 발
2002년 결혼한 서 대표 부부는 이듬해 봄 신혼여행을 청송교도소(현 경북북부교도소)로 갔다. 이 신혼여행에 서 위원이 동행하면서 신혼여행은 가족여행이 됐고 서 위원은 처음으로 ‘교도소’라는 공간을 체험했다. 교도소를 떠나면서 서 위원은 교도소 건물 창 밖으로 누군가 한 쪽 손을 내밀고 흔드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 했다. 서 대표는 “사람이 그리워서 인사하는 거니까 너도 같이 손 흔들어 줘라”고 말했다.
찾아오는 이 없는 재소자가 사람이 그리워, 떠나는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그 모습이 서 위원에게는 교도소가 던져준 첫 기억이자 슬픔이었고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했다. 그 후 서 위원은 대학 재학 중에도 월 1회 이상은 교도소를 찾았다. 가족에게마저 버림 받았거나 고아로 자라 절대 고독 속에 사는 재소자들에게 나 한 사람만이라도 ‘믿어주는 사람’, ‘자기 편인 사람’이 돼 주고 싶어서였다.
교정사목의 핵심은 ‘자매상담’이다. 청송교도소의 경우 자매상담에 20~25명의 재소자가 참석한다. 남자 재소자들도 자매상담에서는 ‘자매’라고 부른다. 천주교 신자나 천주교에 호감을 지닌 이들이 주로 참석하고 교도관들이 무연고자나 고아 재소자들을 자매상담에 안내해 주는 사례도 있다.
“교도관들은 자매들을 가슴에 붙은 수번을 따라 ‘000번’이라고 불러요. 하지만 아버지는 꼭 이름으로 부르세요. 청송교도소 재소자는 대부분 장기수나 무기수여서 이름마저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매들에게 형기는 묻지만 죄명을 묻지는 않아요. 죄명을 알면 편견이 생길 수 있거든요.”
자매상담은 기도로 시작해 자기소개, 음식 나눔, 자신의 부고기사 써보기, 낙엽 보며 느낀 점 말해보기 등 여러 프로그램으로 꾸며진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되는 자매상담은 재소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기도 해요. 평소에는 서로 다른 방을 쓰는 재소자들끼리는 함께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거든요. 프로그램은 아버지가 주로 진행하고 저와 어머니는 음식에 신경을 많이 써요. 자매들이 따뜻할 때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교도소 근처에서 음식을 장만해 들어갑니다. 자매들과 같은 방을 쓰는 재소자들 몫까지 생각해서 보통 100인분을 준비해요.”
김밥, 빵, 과자, 초콜릿, 떡처럼 교도소에서는 접하지 못하는 음식을 주로 준비하는데 “10년 만에 붕어빵을 먹었다”, “김밥을 몇 년 만에 먹는지 모르겠다”는 재소자들이 많다.
간단한 기도로 다음을 기약하면서 아쉽게 자매상담을 마무리할 때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단 한 명의 재소자라도 찾아갑니다”
“자매상담은 재소자가 교도소에서 생활하는 동안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이 중요해요. 자매가 이감되면 이감된 교도소를 찾아가 계속합니다. 전국 어디든 단 한 명의 자매를 위해 새벽 4시에 집에서 나와 밤 11시에 돌아오곤 하지요. 한 자매가 노래가 듣고 싶다고 해서 성악하는 수사님과 교도소에 찾아가 한 사람만을 위해 수사님이 노래 두 곡을 부른 적도 있답니다.”
자매상담으로 인연을 맺고 출소한 자매들이 마땅히 돌아갈 곳이 없으면 민들레국수집에서는 국수집 근처에 집을 마련해 주고 자활을 돕는다. 그러나 범죄의 유혹에 다시 넘어가 교도소로 보내진 자매와는 그 때부터 자매상담이 또 다시 시작된다. 아무리 큰 죄인도 하느님은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매상담에서 각별히 신경쓰는 것에 ‘영치금’이 있다. ‘법자’(法子), 누구의 자식도 아니고 친척도 없어 ‘법무부 자식’이 돼 버린 자매들에게도 교도소 생활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 자매상담 한 번에 150~200만 원의 영치금을 챙겨 간다. 영치금을 받는 자매들 중에는 “서영남 대표 가족이 믿는 하느님을 알고 싶고 나도 믿고 싶어서 왔다”는 이들이 여럿이고 영치금을 모아 다른 재소자를 돕거나 민들레국수집에 기부하는 이들도 많다.
“영치금을 꼬박꼬박 모았던 사형수가 있었어요. 자기가 사형 당하면 장례비용이 필요하니까 영치금을 모았던 것인데 자매상담에 나오면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어요. 이제 장례비용 모을 필요가 없게 됐다면서 민들레국수집에 그동안 모았던 영치금을 보내왔습니다.”
동료 재소자와 민들레국수집 돕는 자매들
서 위원이 교정사목을 하면서 가장 각별하게 여기는 자매 중 한 사람인 ‘용기 삼촌’ 박용기(막시밀리아노 콜베)씨는 ‘엄마에게 밥상 차려 드리는 심정으로’ 매월 작업상여금으로 받은 3만 원을 모아 민들레국수집에 기부하고 있다. 박용기씨는 인천지역 조폭으로 살다 20년이 넘는 형을 받고 청송교도소에서 50대 중반의 나이를 맞았다. 밥상을 차려드리고 싶었던 어머니는 5년 전 선종했고 서 대표 가족을 통해 나중에야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씨 어머니는 생의 마지막을 치매로 고생하면서 “우리 용기 밥 차려 줘야 해”라는 말을 되풀이하다 숨을 거뒀다. 조만간 출소하는 박씨는 민들레국수집에서 봉사하기 위해 교도소에서 취사반 작업을 자원해서 맡았고 민들레국수집도 박씨의 거처를 미리 마련해 뒀다.
자매상담에서 인연을 맺은 자매들은 손편지를 써 민들레국수집으로 보내온다. 제일 기억에 남는 편지의 주인공인 배영선씨는 자매상담에 나오기 위해 모범수가 됐고 서 위원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 한글을 배웠다. 교도소 재소자 중에는 한글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배씨도 서 위원이 보내준 동화책과 한글 교재로 공부해 “우리 내년에도 친해보자꾸나”라는 동화 같은 편지를 보내곤 한다. 교도소에서 민들레국수집 도움으로 한글을 배운 자매들 중에는 붓글씨까지 익혀 서예 작품으로 쓴 가톨릭 기도문을 민들레국수집으로 보내오는 이도 있다.
서 위원은 “제 먼 훗날의 소망이라면 아버지, 어머니가 나이가 들어 혼자 힘으로 움직이기 힘들게 됐을 때, 제가 차를 운전해서 부모님과 함께 교도소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전했다.
서 위원은 12월 3일 필리핀으로 떠났다. 아버지를 대신해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을 한 달 간 운영하기 위해서다. 아버지가 필리핀에서 그랬듯 서 위원에게도 필리핀에 있는 동안 필리핀의 교도소 재소자들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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