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님은 우리 한국천주교회를 넘어서 한국 사회의 큰 어른이셨습니다. 저는 주교회의 일을 하게 되는 그 마당에서 추기경님을 만나 뵈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추기경님과의 짧은 만남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잔잔하게 제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주교회의 자리의 식당은 소위 줄을 서서 스스로 음식을 마련해 먹게 되는 아주 소박하고 아담한 곳입니다. 추기경님과의 만남은 바로 식당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기나긴 줄을 서 있는 통에 좀 지루하기도 하였지만, 앞서 계신 분들이 워낙 큰 어른들이시기에 군소리 없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줄을 서지 않고, 앞으로 쭉 나아가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하늘같이 높으신 분들께서 고개를 숙이며 모두 앞으로 가시라 안내하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민주국가에서, 그것도 공동선과 평등의 가톨릭교회에서 누구이길래 새치기를 하나? 내가 줄서서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면서! 새치기 하지 마시라 한소리 하려고 하는 순간, 그분이 김수환 추기경님이셨습니다. 그래서 군소리 없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추기경님은 처음 보는 젊은 신부가 식당에 있으니, 누구시냐고 먼저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블라블라~ 현정수 신부입니다” 인사하였더니, 추기경님의 말씀은 아주 강하였습니다. “블라블라~. 신부님은 과거도 잡으셔야 하고 미래도 잡으셔야 하겠네요!”
추기경님과의 만남은 아주 짧았지만, 그 잔향은 아주 진하였습니다. ‘신부님은 과거도 잡아야 하고, 미래도 잡아야 합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의 쇄신은 절박한 현실 속에서 진행됐습니다. 하느님의 역사하심으로 모든 것이 그분의 섭리하심이겠지만, 인간지사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쇄신의 역사에 있는 우리들….
사목의 최전선에서 급속하게 변하고 있는 사회환경과 대화해야 할 청소년사목, 첫눈이 오는 바로 오늘, 다시금 가슴속에 되새깁니다. ‘과거도 잡고, 미래도 잡아야 한다는 것!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지키고 수호해야 하며, 변해야 할 것은 빨리 쇄신의 길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제 청소년사목의 기도 제목 중 하나입니다. 추기경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립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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