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좋고 물 좋고 기도하기 좋은 곳에서 수많은 청소년이 피정을 함께할 때가 곧 다가옵니다. 지금처럼 아이들을 만날 준비를 하는 때가 되면 곧 만나게 될 녀석들의 실체(?)가 궁금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저의 대림시기는 예수님과 함께 아이들을 기다리는 준비를 하는 때입니다.
제가 있는 이곳 교구 청소년국 갓등이피정의집은 많은 청년과 청소년이 머물다 가는 곳입니다. 지금까지 하느님께서 청소년과 함께하는 자리 이곳저곳에 놓아 주셔서 아이들을 만나다 보니 다른 곳에서 혹은 이전에 피정이나 교육 프로그램에서 만났던 친구를 다시 만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다행히도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이라 제가 먼저 아는 척을 하게 됩니다. ‘와우~ 또 만났군! 잘 지냈어?’라고 인사하면 자기를 기억해 주기를 내심 기대했으면서도 아닌 척하면서 ‘저 아세요?’라고 답합니다. 그러면 당황하지 않고 바로 답해줍니다. ‘알지. 너 지난번에 만났잖아.’ 그러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묻습니다. ‘이름이 뭔데요?’… 당황스럽겠죠? 그러나 저는 당황하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세례명이 거의 몇 개의 범주 안에 포함되거든요. 제가 떠듬떠듬 기억을 더듬으면서 고심하는 중에 옆에 있던 친구 녀석이 힌트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우연히 그 아이의 세례명을 맞출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제가 그 아이의 세례명을 기억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 아이는 저에게 충성을 다합니다. 피정 기간 내내 제가 진행하는 어떤 프로그램, 어떤 활동이든 제 말에 귀기울여 주고, 제 뜻을 파악하려 애쓰고, 다른 친구들을 독려해 가면서 저를 돕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름을 기억하게 된 아이 중 몇몇은 ‘쌤! 저도 쌤처럼 청소년 만나는 일 해보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는 성인이 돼서 지금 저와 함께 청소년 피정 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 친구 지금도 저에게 충성을 다합니다.
우리의 만남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기억되는 일은 실로 엄청난 결과를 몰고 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만난 아이 중의 한 명이라도, 단 한 명이라도 천국에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제 꿈이고 그 때문에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저와 그 친구의 만남에서 일어난, 세례명을 기억한 작은 사건에서 또 다른 아이들을 천국으로 안내하고자 하는 일에 새로운 사람을 불러 세워주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두셨다.’(루카 12,7)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너무 잘 아시고 기억하시고 불러주십니다. 그 부르심에 귀 기울이고 그 만남에 감동을 한다면 우리의 삶이 바뀌지 않을까요? 그 친구처럼 말입니다.
지금 ‘나의 이름’을 불러 주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으러 같이 가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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