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 구라주일을 맞아 구라사업에 헌신하는 이들을 떠올리며, 더욱 숨어서 일하는 이를 찾았다. 마침 한국 가톨릭 나사업가 연합회회장 李경재 신부의 도움을 받아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山 12번지의 동혜원에서 만 17년을 나환자들 안에 묻혀 사는 서이멜다 수녀(이태리人ㆍ53세)를 찾아갔다. 그러나 서수녀는 예수의 작은 자매전교회 회원이기도 하지만 필사적으로 취재에 응해주지 않았고 더구나 지난해 서울 모일간지에 느닷없이 게재된 기사때문에 사흘을 울었다는 주민들이 얘기도 있었다. 따라서 이기사는 서수녀와 함께 사는 주변사람들로부터 취재한 내용을 엮은 것이며 사진도 여름에 찍은것임을 밝혀둔다.
<편집자註>
지금은 반듯하게 정착촌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자 활하고있는 동혜원이지만 서이멜다 수녀가 동혜원에 온 1967년 당시만해도 사방에 흩어진 이들을 모아 경우 정착하는 단계와 숱한 경제적 의식적 단계와 숱한 경제적 의식적 어려움이 도처에 깔려있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벽안의 이탈리아인으로서, 예수의 작은 형제회 수사 2명과 한국인 자매회 수녀 1명과 부임, 동혜원 가족들의 정신적인 어머니로서, 간호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온 서이멜다 수녀.
가장 그늘진 곳에서 스스로 그늘진자되어 종으로서의 삶을 엮어가는 예수의 작은 자매전교회-. 그늘진 현장안에 묻혀 드러내지 않는 것은 복음을 살고자하는 이들에게 참으로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나 마음 깊숙이에서 우러나오는 손놀림과 말, 표정에서 표현되는 복음의 빛은 아무리 아무리 감추려해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수녀와의 삶을 섞으면서 체험한 따스함 그 따스함을 또 스스로도 살려는 이들의 입과 행동을 통해 전해져 나가기 때문이다.
수녀가 이땅에 온것은 확실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대개 동혜원에 오기전 약 2년간을 경남 진주와 삼랑진 근처에 있었다니 1964, 5년경으로 추측된다.
처음 동혜원에 왔을때 서툰 언어 등으로 많은 애를 먹었지만 3년을 함께 일한 형제회 수사들과 동혜원 가족들과의 희로애락을 통해 지금은 막힘이 없다.
50여세대 2백 30명 주민 전부가 신자인 동혜원 식구중의 한사람으로 한국인 우수녀와 함께 살지만 마을 사람들이『수녀님』이라고 할때는 서수녀이고 우수녀는 필히『우수녀님』이라고 부른다.
이들에게 스며는 서수녀는 교육자적인 수도자도 아니고 조금도 접근하기 어려운 수도자도 아니다. 다만 같이 땅을 밟고 같이 생각하고 기쁨과 슬픔과 아픔안에 함께하는 동반자이다.
그러나 12년 세월동안 서수녀이든 수도회에서든 동혜원에 물질적으로 보탠 것은 하나도 없다. 「물질적인것」이라고 굳이 말한다면 마을사람들이 서수녀 먹으라고 갖다준 쌀이나 사과를 정착촌 안에서도 가난하고 병든 가족들에게 죄다 갖다준것 밖에 없다.
서수녀에게 선물한 것이 딴데로 가버리자『속이 상해(?) 이제 갖다드리지 않는다』는 주민도 있다.
옹기종기 모여앉은 마을집들보다 하등 나은것도 없는 조그마한 집에서 마을 사람들이『어떻게 저렇게 먹고 그 많은 일을 해낼까』할 정도의 극히 단순한 음식, 장식품 하나 없는 작고 소박한방에서 먹고 자고 한다.
새벽 4시면 일어나 6시에 마을사람들과 함께하는 아침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서수녀는 초중고주일학교 기도모임, 성서모임 등을 이끌고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진료를 한다. 물리치료뿐만 아니라 수술해야하는 병, 불치병이외 웬만한 병은 다 처치한다.
특히 지난 성탄준비 중 얼음판에 미끄러져 오른팔을 기브스했지만 용하게도 잘처리해낸다고 주민들은 감탄한다. 그러나 좀 위중한 환자가 발생하면 밤낮을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주민들은『병나는 것이 걱정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서수녀는 이외에도 매월 정기적으로 인근 영광과장 수둥지의 정착촌 환자들을 진료하러 간다. 보자기로 둘둘 싼 진료보따리를 들고 나가는 수녀가 가끔 봇짐장사처럼 보이지만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도 어색하지않다.
작은 몸매 어디에서 그런 강인함이 나오는지 신기하지만 가끔 서수녀가 동혜원을 비울때면『울타리가 없어진듯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다』고 털어놓는다.
『지금까지 수녀님과 십수년을 같이 살았지만 아직 화내는 모습을 한번도 볼수 없었다』는 공소회장 유덕영씨는『한치의 거리감도 없이 항상 어린이애 같은 마음으로 기뻐하고 사랑하는 서수녀님은 우리 신앙생활의 모범』이라고 덧붙였다.
그리스도의 성체를 영함으로써 말로만이 아니라 몸으로 나누는 것이 크리스찬으로서 당연한 일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소외되고 호소할데 없는 음성나환자 정착촌 주민들과 몸과 마음을 함께하는 삶안에서 많은이들이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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