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1994년 교서 「제삼천년기」에서 “2000년은 열렬한 성찬의 해가 될 것입니다. 성체성사 안에서, 20세기 전에 마리아의 태중에서 육신을 취하셨던 구세주께서는 당신 자신을 신적 생명의 원천으로서 인류에게 계속하여 내어 주십니다”(55항)라고 천명하시고, 1998년 교서 「주님의 날」(Dies Domini)을 통해서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신자들이 모이는 날인 주일과 주일 성찬례를 강조하셨다. 2000년 대희년에는 교회와 세계 안에 살아계시고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로마에서 ‘세계성체대회’가 개최되었다. 대희년을 마무리하면서 교황께서는 2001년 「새 천년기」 교서를 통해서 모든 신자들이 바라봐야 할 얼굴은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고, 바로 이 그리스도에게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얼굴을 가장 잘 바라보고 알아보시는 성모님과 함께 구원의 신비를 관상하도록 묵주기도의 해(2002년 10월~2003년 10월)를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를 발표하면서 시작하였다. 이 교서에서 묵주기도를 성모님의 문으로 예수님 삶과 죽음의 신비를 바라보는 관상기도로 정의하면서 묵주기도에 ‘빛의 신비’를 추가하여 더 완벽한 복음의 요약으로 만들었다. 이 ‘빛의 신비’는 주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최후만찬에서 거룩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사건에서 절정에 이른다.
교황께서는 교회가 특별히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신비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성체성사의 해’(2004년 10월~2005년 10월)에 교서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이하, 교서)를 발표하면서 선포하였다.
교서는 서론, 4장으로 이루어진 본론,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론 제1장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대희년의 발자취를 그동안의 교서와 회칙들을 통해 살펴보고, 성체성사의 해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사목의 특징을 이루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강생과 구원 사건을 묵상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음을 강조한다. 제2장 ‘빛의 신비인 성체성사’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임을 선포하며 신자들은 성체성사를 통해 하느님 말씀 뿐 아니라 생명의 빵으로 영적 힘을 얻게 된다고 밝힌다. 제3장은 ‘친교의 근원이자 표징인 성체성사’의 관점에서 성체성사가 성체를 모시는 신자들의 일치를 촉진시킨다고 강조하며, 제4장 ‘선교원리이자 계획인 성체성사’에서 예수와의 만남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주님의 증인이 되도록 하며 교회 복음화에 나서게 한다고 말한다.
성체성사의 해는 새 천년기 사목계획의 일환
성체성사의 해를 선언한 바로 다음 주일인 6월 13일 삼종기도 훈화에서 교황께서는 성체성사의 해 선포배경을 자세히 설명했다. 새 천년기를 맞아 그리스도로부터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신자들은 성체성사 안에 참으로 현존해 계시는 강생하신 말씀(그리스도)의 얼굴을 묵상함으로써 기도에 맛들이고 복음적 생활에 투철함으로써 새로운 복음화에 매진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리스도를 닮고 그리스도께 기도하고 그리스도를 선포하면서 성모 마리아와 함께 주님 성체성혈의 신비를 향해 신앙과 사랑 안에서 모든 공동체가 성체성사의 해 안에서 성장하기를 희망한다고 교황은 밝혔다. 곧 교황이 성체성사의 해를 선포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제3천년기를 준비하던 1990년대 후반부터 이미 계획해온 새 천년기 사목계획의 일환이다.
교황의 권고로 세계교회는 2000년 대희년과 새 천년기 준비를 위해 1997년 성자의 해, 1998년 성령의 해, 1999년 성부의 해를 지냈다. 2000년 대희년을 지내고 2002년 10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묵주기도의 해를 보냈다. 그리스도 강생 2000년을 기념하는 대희년과 성모 마리아와 함께 그리스도의 신비를 묵상하는 묵주기도의 해에 이어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성체성사의 해 제정은 연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교서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 10항에서 ‘성체성사의 해’는 이전까지의 여정을 종합하는 해라고 밝히고 있다. “‘성체성사의 해’는 그리스도와 그분 얼굴에 대한 관상이라는 주제에 변함없이 충실하면서도, 해를 거듭하면서 더욱 풍요로워진 배경 위에서 시작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성체성사의 해’는 우리가 걸어온 여정의 정점이며 그 여정을 종합하는 해가 되어야 합니다.” 교서는 앞선 권고와 회칙들에서 성체성사의 의미를 체득하기 위해서 제시했던 몇 가지 생각들을 정리해 제시하고 있다. 교황께서는 성체성사의 해를 통해 교회의 신비와 신앙생활의 정점인 성체성사 안에서 새 복음화의 열정으로 역사의 바다에 깊이 뛰어들도록 권고하고 있다.
▲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는 신자들에게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교회 복음화에 나서도록 초대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빛의 신비인 성체성사
교서는 성체성사를 빛의 신비와 연관하여 설명한다. 동방박사들이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님을 찾고 경배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세상의 빛”(요한 8,12)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쉽게 이해가 된다.
빛은 어두운 곳일수록 그 진가를 발휘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가족만의 이익과 안위만을 위하고 물질만능주의에 젖어들어 이웃의 고통에 무관심한 어두운 세상에서 사랑의 희망을 갖게 하는 빛이시다. 그런데 단순히 이승에서의 위안과 평안을 넘어서 영원한 구원의 희망을 주는 빛이라는 특성은 주님의 변모와 부활 사건에서 더욱 명백히 드러났으며, 이러한 사건을 통해 그분의 신적 영광이 눈부시게 빛났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영광이 성체성사에 감추어져 있으며 신앙을 통해서 그 감추어진 것들이 현실이 된다. 그래서 성체성사는 탁월한 신앙의 신비(mysterium fidei)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이 완전히 감추어진 그 신비를 통하여 빛의 신비가 되시고, 그 신비 덕분에 신자들은 하느님의 생명 안으로 깊이”(교서 11항) 들어갈 수 있다.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루카 24,29 참조)
현재의 미사는 두 식탁, 곧 말씀의 식탁과 빵의 식탁으로 이루어져있고 이 둘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드러내는 의미를 각기 다른 매개체를 통해서 연속해서 드러낸다. 이러한 연속성은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이야기에서 잘 드러난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예수님은 함께 걸어가면서 성경 전체를 당신 신비와 연관하여 잘 설명을 해주셨다.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주셨다.”(루카 24,27) 그분의 말씀은 “제자들의 마음에 ‘뜨거운’ 감동을 불러일으켜, 그들을 슬픔과 좌절의 어둠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들 안에 그분과 함께 머무르려는 열망을 불러일으킵니다.”(교서 12항).
인생을 긴 여행길이라 할 때 누구와 함께 가고 싶고, 어딘가에서 머물러 쉬어야 할 때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사도로 이어오는 교회는 이승뿐만 아니라 저승에서도 주님이라 고백하는 그분과 함께 걷고 싶고 함께 머물기를 희망하며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라고 청한다. 이제 그분은 그 청을 받아들이셨을 뿐만 아니라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마태 28,20 참조). 그런데 그분이 함께 하고 계심을 어떻게 알아보고 어떻게 체험할 수 있을까?
윤종식 신부는 의정부교구 소속으로, 1995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로마 교황청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전례학을 가르치면서,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