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교중미사 직전, 신동호 신부가 장백의와 허리띠, 영대와 제의를 하나하나 정성껏 입었다. 제의를 갖춰 입는 하얀 그의 손에는 작은 떨림이 있었다. 처음으로 신자들을 만난다는 설렘과 7년을 하루같이 기다렸던 시간이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는 기쁨이 섞여 가슴이 벅차올랐다. 성당 안에서 신자들의 입당성가가 시작됐다. 제의를 착용하면서 사제의 기도를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새긴 신 신부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그리곤 신자들이 기다리는 성당으로 첫 발을 뗐다.
지난 5일 교구 사제로 새롭게 태어난 신동호 신부가 7일 안양대리구 인덕원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했다. 그는 첫 미사를 앞두고 “오래 기다렸고 바랐고 꿈꿨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제의 마음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고 고백했다.
2008년 26살 나이로 신학교에 입학한 신 신부는 처음부터 사제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좋은 대학에 가야 성공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따라 열심히 공부했고 일반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았다. 이대로 졸업하고 취업하는 것이 의미 없게 느꼈다.
“인생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어요. 그 때, ‘신학교 가라’는 주임신부님의 말씀이 제 마음에 파고를 일으켰어요. 그 말을 듣고는 어찌나 떨림이 심했던지 그날은 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게 뭐지 싶더라고요.”
작은 돌멩이로 일어난 파동은 점점 커졌다. ‘다른 사람을 위한 사제의 삶이 궁금하다’에서 어느새 ‘살고 싶다’로 바꿨다. 사제들에게서 전해지는 자유와 기쁨, 행복을 느끼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결심을 가족들에게 전했다. 둘째 아들의 갑작스러운 선언에 가족들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쉽지 않을 삶을 살아갈 아들 걱정에 반대도 있었다.
“나중에는 허락하셨지만 아버지께서 한동안 반대하셨어요. 그런데 나중에 들으니 모임만 나가시면 우리 아들 신부님 된다고 자랑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아버지는 신 신부의 서품식을 보지 못하고 지난 9월 선종했다. 아버지 이야기에 신 신부의 눈이 붉어졌다. “지난해 폐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어요. 제 부제 서품식 때는 참석하셨는데,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온 것에 대해 좋아하셨어요. 아마 하늘나라에서 사제 서품식을 보시고 기뻐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신 신부는 자신이 앞으로 걸어갈 길이 ‘영광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기쁨과 영광 뒤에는 고통과 인내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마음에 새겼다. 그런 마음을 그는 직접 디자인한 제의에 담았다. 첫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신 신부는 향주삼덕과 복음삼덕 그리고 가시관을 형상화한 제의를 입고 두 손을 모았다.
“사제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오늘 이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주님 제대에 가까이 가는 이 기다림의 끝에서 주님의 식탁, 말씀, 몸을 나누는 사제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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