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2014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올해 우리나라에서 상영된 외화 중 으뜸은 당연히 ‘인터스텔라’(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공상과학, 미국, 2014년, 169분)일 것이다. 개봉한 지 불과 11일 만에 500만 관객을 넘어섰고 12월까지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가볍게 천만 관객을 돌파하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과연 어떤 매력이 영화의 흥행을 주도했을까?
영화의 소재들은 어느 정도 알려진 과학 상식들이다. 자원을 무분별하게 뽑아 써 지구 곳곳을 황폐화 시킨 인간들, 그래도 살아야 하겠기에 인간이 살만한 천체를 찾아 나서는 우주여행, 어마어마한 직선거리를 단숨에 끌어당기는 웜-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시간의 속성을 설명하는 상대성 이론, 우주 생성의 원리를 파헤치는 대자기장 등등. 어디선가 한두 번 들어보았음직한 과학 상식들이 영화를 장식한다. 그리고 전지가 방전될 즈음 시계의 초침이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책장에서 책이 저절로 떨어지는 현상을 통해 은근슬쩍 유령의 존재를 암시하는 내용도 퍽 재미있었다. 감독이 관객의 눈높이에서 무엇인가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인터스텔라’가 상영된 후 많은 잡지들과 신문에서 특집을 실었고 과학적 발견들이 영화에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알려주기에 여념이 없다. 이로써 영화에 대한 흥미가 한껏 돋우어졌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영화가 신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언론이 인색해 보인다. 분명 종교적으로 중요한 시각을 제공하고 있는데 말이다.
우리는 보통 시간이 직선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면 과거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층층이 쌓여있다고 말해야 옳다. 시간이 포함된 4차원에선 그리되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단지 시간이 더해져 4차원을 경험했다고 해서 과거의 역사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보다는 한 차원이 더 높아져야 시공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지 않겠는가. 신의 존재를 암시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5차원의 세계를 추측해내야 한다. 감독은 3차원의 인간 쿠퍼(매튜 메커너히)를 5차원의 세계로 집어넣는 모험을 감행한다.
감독이 만들어놓은 5차원의 세계는 실로 경이로웠다. 스텐리 큐브릭의 ‘2001년의 오딧세이’(1968)에서 보여준 블랙홀이 있었지만 그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는다. 비록 CG를 통해 특수효과를 내기는 했지만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우주공간과 우주여행을 매우 그럴듯한 영상 언어로 풀어냈다. 그 자체만으로도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히 있다. 가능하면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감상하시기를 바란다.
5차원의 고등 존재는 위기에 빠진 인류를 구하기 위해 차원의 비밀을 인간에게 알려준다. 그러나 이를 찾아내는 과정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 가능하다. 쿠퍼는 우주비행사이자 과학자인 자신의 지력을 최대한 발휘해 5차원의 존재가 인류에게 내준 수수께끼를 풀어내려 한다. 그 사이에 ‘사랑’이 비밀을 풀어낼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는 사실이 강하게 부각된다. 영화에서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는 지점이다.
박태식 신부는 서강대 영문과와 종교학과 대학원을 졸업 후 독일 괴팅엔대에서 신학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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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수고해 주신 박태식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김경희(바오로딸수도회) 수녀님께서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영화 부문을 맡아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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