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단은 한국처럼 하얀 겨울은 없습니다. 하지만 적도 위의 북반구에 위치하고 있어서 같은 시기에 늦가을의 분위기는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본격적인 건기에 들어선 요즘 낮에는 기온이 35도이지만 새벽에는 18도까지 떨어집니다. 한국 영하의 겨울추위에 비할 바 아니지만 20도 가까운 기온차이에 몸은 자꾸 움츠러듭니다. 아침미사 중에는 여기저기서 기침 소리를 많이 듣게 됩니다.
우기 중에는 마냥 푸르렀던 나무들 중 일부가 잎이 갈색으로 변하고 낙엽이 졌습니다. 어떤 나무는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았습니다. 추위 때문인지 건조한 날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바싹 마른 낙엽을 보면서 걷다보니 문득, 한국의 늦가을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한국의 가을은 왜 그렇게 쓸쓸하게 느껴졌었던지…. 아마 한여름에 만발했던 모든 것들이 사그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그리움과 추억이 가을을 표현하는 단어인 것은 다 이유가 있겠지요.
하지만 가을이 또한 풍요로움의 계절인 것처럼, 이곳에서도 사람들이 경작하는 수수가 서서히 알을 맺고 여물어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또 망고나무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한해가 끝나가는 시기에 전례력으로는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것이 새삼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대림시기가 아기예수님을 기다리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세상 마지막 때를 묵상하고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는 것도 오묘합니다.
어제 아침, 마을 신자들 중 한 명의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날 밤에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깨어나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이는 60세 정도 되었는데, 연세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그 정도 나이면 한국의 80대 나이에서 나타나는 쇠약함을 보이기에 그 나이에 사망하는 일이 드문 일은 아닙니다.
저녁에 신자들과 함께 집을 방문하여 기도를 해주고 시신의 매장을 도왔습니다. 가서 보니, 그녀는 유독 손녀들이 많았는데 그 중 6명이 모두 갓난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증조모의 무덤 주위에서 엄마의 젖을 물고 있는 6명의 아기들을 보니 불편했던 마음이 편안해져 미소가 절로 나왔습니다. 아기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하나씩 축복을 해주니, 땡그랗게 뜬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 아기들의 표정에 모인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가 웃음을 터뜨립니다.
그리고 저녁을 만들어 먹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자정이 조금 못 된 무렵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와 사제관 문을 두드렸습니다. 나가서 보니, 스무 살을 갓 넘은 듯한 처녀가 허벅지에 총상을 입고 가족들에 의해 실려 왔습니다. 급하게 의사선생님을 깨우고 응급처치를 청했습니다. 그녀의 대퇴부 뼈는 심하게 으스러지고 근육과 혈관도 끔찍하게 파열돼 노출돼 있었습니다. 이미 사고를 당한 지 4시간이 흘러 의식을 잃고 심장 박동이 멈추어가는 그녀를 의사선생님이 심폐소생술로 살려내기를 반복하셨지만, 그녀는 결국 과다 출혈로 인해 사망했습니다.
고통 속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죽어가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너무도 절망적인 상황이었고, 그 순간에는 어떠한 희망적인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단지 총을 함부로 쏴대는 이들의 무지함과 의료서비스 환경의 열악함을 탓하며, 한 젊은 생명이 두려움에 떨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바라보아야만 했습니다.
사제이기에 늘 희망을 논하며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많이 했지만, 나는 과연 삶 안에서 스스로 희망을 발견했는가 생각해보게 되는 대림시기입니다. 계절이 돌고돌듯 반복되는 삶과 죽음이지만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희망을 발견하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겠지요.
▲ 낙엽이 지기 시작하는 남수단의 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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