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 되면 시간의 속도를 새삼 실감합니다. 2014년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12월이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바쁘게 열심히 살았던 것 같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생각해보면, 올해를 시작하며 다짐했던 목표들 대부분이 잘 이뤄지지 않아서 씁쓸하기도 하고, 너무 무리한 계획을 세워 놓고 실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위안도 해 봅니다.
2014년 한 해 동안 저는 군인, 두 아이의 엄마, 아내, 며느리, 딸, 율리아…. 저를 부르는 수많은 이름에 충실히 대답하지 못했고, 때론 서로 충돌되는 제 역할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해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하루종일 바쁘게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누군가에게는 미안한 감정을 가져야 하는 저의 상황에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군인으로서의 나의 모습, 나에게 주어진 임무에만 집중하면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모든 시간과 열정을 업무에 쏟을 수 있었기에 그 누구보다 적극적일 수 있었던 나인데, ‘엄마’가 된 지금 퇴근이 늦어지면 “엄마 왜 이렇게 늦게 와”라며 눈물짓는 네 살 딸 아이 생각에 퇴근시간이면 마음이 바빠져야 하고, 시기를 다투는 긴박한 임무를 맡는 것에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부르는 수많은 ‘이름’이 많다는 사실이 항상 부담스럽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만큼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고, 저를 사랑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이며, 저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넉넉히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2015년은 1998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 접했던 전투복을 입은 지 17년이 되는 해입니다.
막연히 푸른 제복이 좋아서 군인의 길을 선택했고, ‘내 생명 조국을 위해’라는 문구에 가슴이 뛰고, ‘위국헌신 군인본분’을 외치며 하루를 시작했던 생도는 이제 영관급 장교가 됐습니다. 자신의 업무가 전부였고 군인이면 당연히 그렇게 근무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어린 장교는 군인의 삶과 어머니의 역할 속에서 조화로운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하는 성숙한 법무관이 됐습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제가 만나고 있는 병사들, 비록 그가 범죄를 저질러 수사 중에 있다 하더라도 누군가가 헌신해 키워낸 소중한 아들이기에 우리의 어머니들께서 군에 맡겨주신 소중한 그 아들을 건강히 어머니의 품으로 다시 돌려 드려야하는 것도 군인인 저의 중요한 임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비록 아이들의 ‘엄마’이기에 저의 모든 시간과 열정을 업무에 쏟을 수 없는 순간이 있지만, 오히려 엄마이기에 제가 만나는 병사들을 어머니의 마음으로 아끼고 사랑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2014년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저에게 수많은 역할을 허락하시고 이를 통해 저를 성숙하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주어진 많은 ‘이름’들에 보다 더 충실히, 조화롭게 응답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청해 봅니다.
군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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