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인ㆍ불구행려환자들의 보호시설인 대구 시립희망원이 몇년사이「참 살기 좋은 곳으로 변했다」는 말들을 듣는다. 대구대교구가 80년 4월 市로부터 수탁받아 운영해온 이래 원이생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쓴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그안에서 그들 편에 서서 일하며 동분서주 희망원 복지시설 향상에 밑거름 역할을 한이가 있다. 그가 바로 희망원 사무장 김규일씨(마르띠노ㆍ38세)
그가 이곳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은 것은 市공무원들의 좌천지 (?) 로 낙인찍혀 모두가 오기를 꺼려했던 곳이다. 그만큼 이곳 분위기는 험악했고 이곳에 어쩔 수 없이 발령을 받은 市직원들은 당분간 머물다 다른 곳으로 옮길 궁리만 했었다. 이런 곳에 그가 자원했을 때 주위에서는『미쳤다』며 못가게 만류했다.
그도 처음에는 이곳 원장이 함께 일해보자고 재의했을 때 무척 망서렸지만 2대독자로 軍에 안갔으니 군에 갔다온 셈치고 3년간만 봉사해보겠다는 다짐과 그리고 뇌성마비아인 장남을 생각、그 아들을 돌보는 마음으로 이곳 원생들을 위해 일해보겠다는 마음으로 결심을 굳히게 됐다.
『이왕 이곳에 왔으니 복지시설다운 복지시설로 만들어보자』는 결심이었지만 막상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할지 걱정이었다고 한다. 직원들의 복무자세도 문제였고 원생들은 그대로 방치된상태라 무질서속에 풍기문란은 말로 못할정도였다.
한달동안 출퇴근하다가 곧바로 원내에 있는 사택으로 이사온 그는 퇴근후 밤 12시까지 플래시를 돌고 순찰하기시작했다. 말 안듣는 원생과 싸우기도 하고 원생 숙소에서 밤늦게까지 그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며 그들 깊숙히 파고들어 그들을 보다 잘 이해할수 있게 됐다.
그들로부터 배우는 점도 많았고 개선책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면도 있었다. 1ㆍ2년계속 야근한 결과 조금씩체계가 잡히는 듯 했고 그에 따라 그는 정신적ㆍ육체적으로 너무 피로해져 권태기마저 느끼게 돼 다른 곳으로 옮길 궁리도 했다.
그럴즈음 대구대교구와 市사이에 희망원 운영관계를 놓고 절충이 오고갔고 80년 4월 교구가 정식으로 희망원을 수탁 운영하게 됐다. 이곳생태를 잘아는 그를 희망원원장으로 부임한 조정헌신부가 꼭 붙잡고 일을 맡
겼다고 한다. 어쩔수없이 (?) 희망원에 다시 눌러 앉게된 그의 일손은 더욱 바빠졌다.
원생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예산을 더 타내야하기 때문에 늘 시청에 들어가면 싸워야했다. 또 원생들이 사는 보람을 느끼도록 일거리를 찾아 주어야 했고 상담도 응해야했다.
원생들의 기술교육을 위해 남자들에겐 목공예ㆍ미장타일어용을、여자들에겐 미용ㆍ양재반을 설립했으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병들어 있는 이들이라 1천여 원생 중 기술교육을 받을 대상자가 별로 없는 실정이란다.
원생들 중에서 새출발한 후 희망원 덕택으로 새사람이 됐다고 편지를 보내오거나 찾아올 때 보람을 느낀다는 김일규씨는 『무엇보다도 규모가 커지다보니 옛날처럼 원생들과 접촉할 기회가 적어 아쉽다』고 말하면서 과거에는 원생과 직원간에도 불신이 많고 투서도 많았으나 요즘엔 그런일 없이 서로 협조하는 모습이 흐뭇하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아픈 사람들의 하소연을 끝까지 들어주다보면 너무 힘들고 피곤하다고 그는 불평 아닌 불평을 하지만 주위에서 그의 상담 솜씨는『울고 온 사람을 웃고 나가도록 용기를 주고있다』며 매사에 적극적이고 성실한 그를 희망원 가족으로는 너무나 적임자라고 말한다.
항상 웃는 모습으로 열심히 뛰고 있는 그였지만 그의 가정엔 남모를 고통이 있었다.
장남 헌직 (베드로ㆍ14세) 군이 뇌성마비인데다 둘째ㆍ셋째ㆍ넷째가 태어나는대로 황달에 걸려 곧바로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맛보아야 했다.『원생들과 직원들이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할 때 너무 고마왔고 희망원 가족임을 새삼 느꼈다』는 그는『그들의 기도의 힘 덕택인지 2년전 진근 (요한ㆍ2세)이가 태어났고 희망원 전체가 경사로 떠들썩했었다』고 활짝 웃는다. 아내(루치아ㆍ35세)의 뒷바라지와 기도의 힘 역시 그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이곳에 있으니 요즈음 윤리도덕이 땅에 떨어졌다고하는 사회의 인심을 직감할 수가 있어요、부모 형제 자매가 이곳에 수용돼 있는데도 혈연관계를 끊어버리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그는 이런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한다.
80년 5백여명이던 원생수가 현재는 1천명을 웃돌고 있는데『어떻게 해서 희망원이 살기 좋은 곳으로 소문났는지 모르겠다』는 김일규씨는 2~3년전에 비해 희망원 방문객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고 밝힌다.
『여기있는 이들이 결코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깊이 파고들면 우리와 모두 같은 사람들임을 알수 있어요』의부에서 자칫 선입견을 갖는 이들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런데 김일규씨는 희망원을 「부랑인 수용소」가 아닌「복지시설」로 끌어올리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온 공로로 지난해 11월 제10회 금오대상 사회봉사부문 대상을 받은바있다. <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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