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 지프차에서 유엔군 군복을 입고 뛰어내린 장본인이 하필이면 기석이라는데서 미회의 충격은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8.15 이전에 이미 중학을 마쳤어야 할 나이인데도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태 중학졸업장도 타지 못한 상태였다. 왜정때 학생 운동의 주모자로 복역하다가 광복 덕에 풀려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해방된 조국에서 그동안 못다한 학업을 차분히 있겠다고、나이로 치자면 까마득한 후배들 사이에 끼어들 용기를 보임으로써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때는 바야흐로 좌우익력으로 빛난다는 이유로 시대는 그를 온존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는 어느새 좌익세력의 청년거물로 그를 숭상하는 동시대 젊은이의 최선봉에서 거센 좌우익 이데올로기 싸움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말려들어가 있었다. 그는 또다시 햇볕 스며들지 않는 지하로 숨어들어 좌익사상을 신봉하는 저항운동에 몸을 내맡기고 있는 인물이던 것이다.
『미회、놀랐지. 당연하다. 내자신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것도 이쪽에 잽혀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 그쪽에서 탈출해 왔다. 모든 것이 일장춘몽이었다고 밖엔 할말이 없구나』
그순간 미회는 날카롭게 곤두서는 눈길로 그를 쳐다 보았다. 무책임한 말이다 싶었다.
『오빠、오빠를 믿고 오빠를 따라간 제 친구들은 다 어떻게 되는 거죠? 우선 기옥인 어떡게 되고 영소씬 어떻게 되는 거예요? 저의 아버지도 납치되셨어요』
『뭐야? 아버님께서도? 영소가 의용군으로 나갔다는 소리는 들었다. 하나 기옥이는 남하했더구나』
『그래요? 정말이예요 오빠?』
미회는 기옥이가 자기 오빠를 따라 북상하지않고 남하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순간 눈앞이 확 트여오는 것 같았다.
『나는 네 걱정도 많이 했다. 혹시 또 이동 예술대 같은데 끼어서 따라다니는 건 아닌가 하고…』
『저도 열병에만 안 걸렸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죠. 저도 워낙 영소씨처럼 오빠를 덮어놓고 숭배하던 축이었으니까요』
『미회야. 면목없다. 진정으로 하는 소리다. 나도 이럴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
기성의 얼굴은 고뇌 때문인지 푸석푸석 부어 있었고 머리칼은 희끗희끗한 것이 숱하게 눈에 띄어 흡사 50대 늙은이 꼴이었다.
『그래、지금 오빤 어디 소속인 거예요?』
『목숨은 부지해 놓고 봐야겠지않니. 그런 점으로 동족의 매서운 질책은 두려웠다. 현재는 유엔군 산하인 모 첩보부대 소속이지. 그나저나 너는 어디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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