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임치백(致百, 혹은 致伯 ,一名 君執) 요셉은 체포될 당시까지 외교인으로 남아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면 그가 어떠한 이유에서 입교를 하였으며 어떠한 행적으로 마침내 성인의 자리에 까지 오르게 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요셉은 1804년(純祖4)경 서울 한강변에 살던 외교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찍 모친을 여의고 부유한 편부 슬하에서 자라난 까닭에 어려움을 모르며 오직 사랑 속에서만 생활하였다.약 10년 동안 서당(書堂)에 다니면서 학문을 닦고、한편으로는 무술과 예도(藝道)를 배워 향락을 즐기는 친구들과 상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본성이 유순하고 효심이 지극했던 까닭에 조금도 덕행을 그르치는 일이 없었으며、이러한 그의 행실로 인하여 여러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1830년 경에 이르러 아내와 자식들이 천주교에 입교한 후 요셉 자신도 이에 마음을 기울였으나、즉시 친구들과 교제를 끊지 못하고 입교의 시기를 다음으로 미루기만 하였다. 다만 신자들을 완전히 믿고 형제처럼 대하며、곤란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중에서 4.5명을 집에 데려다 함께 생활하였다.
1835년(惠宗1)에 박해가 일어나 마을의 신자들이 체포되자 그는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하였으며、나중에는 스스로 포졸이 됨으로써 보다 열심히 그들을 도와 주었다. 그후 요셉은 삼개(現 麻浦)마을로 이사하였는데、신자들이 그의 집에 번번히 왕래하였으므로 그도 신자라는 의심을 받고 외교인들로부터 갖은 모함과 욕설을 들었지만 조금도 이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1846년 6월에 선주(船主)였던 아들 임성룡을 따라 황해도 연안으로 나갔다가 신부와 함께 체포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요셉은 즉시 아들이 체포되었다는 마을로 달려갔으나、이미 아들은 해주감영(海州監營)으로 압송된 후였다. 그는 아들을 보기 위하여 스스로 감영의 옥에 갇히는 몸이 되었다.
며칠 후 그들 부자는 함께 서울로 이송되었는데、그 동안에도 그들은 서로 만나지 못하였다.
포청(浦廳)의 옥에 갇힌 요셉은 그곳에서 김신부를 만날 수 있었다. 신부를 보자 그의 마음은 감동으로 넘쳐 입교하고자하는 결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오늘부터 천주교를 믿겠사옵니다. 저는 지금까지 너무나 오래 기다렸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신부는 그에게 옥에 갇힌 것이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이니 정성껏 그에 보답해야 하며 죽을 때까지 충실해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요셉은 이에 순응할 것을 약속하고 교리를 배우기 시작하였으며、드디어 며칠동안 준비한 후 영세를 받기에 이르렀다.
전에 그와 친했던 포졸들은 이러한 그를 보고는 배교시킴으로서 목숨을 구해 주려고 여러가지 유혹의 말들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물리치며 자신은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위해 죽기를 결심하였노라고 명백히 이야기 하였다. 얼마후 포졸들이 요셉의 아들과 며느리를 데리고 와서 다시 배교를 권유하였지만 그의 굳은 결심은 조금도 변하지 아니 하였다. 이제 포졸들은 자신들의 권유를 듣지 않는 것에 더욱 화가나서 그를 거꾸로 매달고는 심하게 매질을 한후 다시 옥에 가두었다.
옥에 갇힌지 3개월이 지난 어느날 포장이 요셉을 불러내어 사형을 내리겠노라고 이야기하자 그는 기쁨에 넘쳐「오늘 법정에서 나에게 사형을 내린다고 합니다. 나는 아무런 공로도 없지만 천주의 특별한 은혜로 먼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게 되면 내려와서 당신들의 손을 이끌고 아버지의 나라로 인도하겠오. 무엇보다도 용기를 가지시오」라고 교우들에게 말하였다. 잠깐 후 포장은 다시 그를 불러서 십계명(十誡命)을 외우라고 하였지만 그가 외우지 못하자、아직 완전한 신자도 아니니 배교하고 석방되라고 강요하였다.
이에 그는 「저는 비록 무식하지만 천주께서 나의 아버지신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이만하면 족한 것 입니다」라고 답하면서 참수치명(斬首致命)하기를 원하였다. 화가 난 포장은 그에게 주뢰형(周牢型) 등 가혹한 고문을 가하도록 하였지만 그는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다시 옥으로 돌아온 요셉은 웃는 빛으로 이야기 하며 태연히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잠시후 남경문(南景文) 베드로가 상처투성이가 되여 들어오자 그를 위로하며 상처를 감싸주었다. 그는 이제 새로운 심문과 형벌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신앙심을 변치 아니하였다. 그러던 중 마침내 그를 매로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졌으며、이리하여 요셉은 자신이 바라지 않던 장살(杖殺)로 순교하는 몸이 되었던 것이니、때는 1846년 9월20일로 그의 나이는 43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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