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저야말로 어디 있을때가 없어요. 혹시 오빠 계신곳에서 취사당번같은 거라도 맡을 순 없을까요?』『그렇게 각박하냐? 하지만 나 있는 곳은 안된다. 아무리 전시라도 미회같이 깨끗한 처녀가 있을데는 못되고…가만히 있자、좀 연구해 보자. 너 이근처 어디서 한 시간 정도만 기다리고 있어라』『저 주머니에 돈도 한 푼 없는걸요 』『딱도 하지. 이리좀 와 봐 』기석은 미회를 길가 어느 찐빵집으로 이끌었다.『여기서 먹으리만치 실컷 먹고 있어. 한시간 후에 꼭데리러 오겠다』기석은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한시간 후에 그는 미회를 데리러 왔다. 이번에는 지프차에 타지 않고 걸어서 왔다. 『오래기다렸지? 거처가 마련되었다』미회는 기석을 만나던 순간부터 이제부턴 거처걱정은 안하게 되리라는 예감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인했다. 그러면서도 맘속 믿바닥에서는 그렇듯 생사를 아랑곳하지 않으며 신봉해 마지 않던 이데올로기란 것을 하루 아침에 내던지고 전향하고만 그에 대한 실망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가 신주 모시듯 받들어마지 않던 허울 좋은 이념에 대한 미련 때문이 아니었다. 그로해서 이제는 다시는 만날수 없는 길로 영원히 갈라지고 만 영소와의 생이별은 어떻게 하며 아버지의 납북도 기석의 책임인것만 같은 고까움이 자꾸만 고개를 쳐들며 깐죽거렸다.
『부대사람들의 가족을 모아둔 집이 있어. 당분간 마땅한 거처가 마련될 때까지 거기서라도 끼어 살아야지 어쩌겠어. 교육정도도 낮고 애들、노인들모두가 방 한칸에서 같이 산데. 워낙 식구가 많고 여자들 뿐이라 말도 많고 시끄러운 모양이지만 부대에서 쌀과 땔감만은 대주고 있다니 그럭저럭 연명은 할수 있을테지. 어때? 그런데라도 가겟어?』『그런데라니요? 그런데라도 없어서 못가죠. 그래、제가 가도 받아줄까요?
그런 걱정같으면 안해도 돼. 그럼 따라와 봐』미회는、화가난 사람처럼 그녀를 기다리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앞장서 걸어가는 기석을 뒤따라 종종 걸음으로 뒤따랐다. 『이렇게 맘대로 나다니셔도 되는거예요?』길바닥에 널려 있는 군복차림의 사나이들이나 헌병들에게 행여 불심검문이라도 받게 되면 어쩌나 행여 미회의 가슴은 계속 콩콩 소리내여 불안스레 뛰고 있었다. 『고마운 신분증이 여기 있잖아. 쓸데없는 걱정은 안하는게 좋아 』기석은 성가신듯 뒤를 돌아보며 왼쪽 앞가슴에 달린 주머니께를 바른쪽으로 톡톡 건드려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기석의 허세라는 것을 미회는 감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당히 먼거리를 그들은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걸어서 마침내 어느 주택가에 이르렀다. 『의과대학 교수네 집이야. 방 한칸을 빌어쓰는 피난가족 때문에 주인집은 골머리깨나 앓고 있다지만 지금은 그런데 개의 할 필요는 없어』기석을 뒤따라 그집의 외곽을 한바퀴 삥돌아 안마당으로 돌아간 미회 눈앞에 서는 피난민 장사치인 듯한 여인과 지난 가족 대표인듯한 30대 여인사이에 거치른 언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글쎄 잔말말고 미스공인가 뭔가하는 미친년을 당장 내놓으라구』『글쎄、지금 없다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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