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의 문을 열며,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로부터 새해 한국교회 전반에서 힘을 실어나갈 사목적 과제와 실천 방향 등을 전해 들었다. 김 대주교는 한국 교회 안팎에서 화해와 연대, 보다 구체적인 형제애를 나누는데 앞장서고 있는 교회의 어른이다. 가톨릭신문 신년대담을 통해, 한국 그리스도인이 실천해 나갈 몫에 관해 조언하는 김 대주교 목소리는 특유의 온화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면서도 단호한 신앙 고백이 묻어나 있었다. 특히 김 대주교는 “하느님의 아들도 스스로 인간이 되시어 우리가 사는 ‘현장’에 직접 오셨다”며 “선교는 세상을 향해 실천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그 ‘현장’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톨릭신문 ‘2015 신년대담’으로 마련한 김희중 대주교와 가톨릭신문 장병일 편집국장의 대담은 2014년 12월 18일 서울 중곡동 주교회의 4층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 장병일 편집국장 (이하 장 국장) : 해가 바뀌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방한을 통해 전하신 말씀은 여전히 큰 울림으로 남아있습니다. 또한 올해는 봉헌생활의 해이자, 바티칸공의회 폐막 50주년을 맞이하는 때입니다. 2015년, 한국교회가 더욱 관심을 갖고 사목적 대응을 해야 하는 분야에 관해 조언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김희중 대주교 (이하 김 대주교) : 저는 한국교회가 실천해야할 바를 크게 두 가지로 봅니다. 우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고문인 「복음의 기쁨」을 한국 교회가 어떻게 실행할지 머리를 맞대는 것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로 표현되는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적 소외계층이 교회 안에서 당당히 대접받고 신앙의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희망을 일구어 나갈 수 있는 안식처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항상 개혁돼야 한다는 명제가 있습니다. 쇄신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매일 반성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물질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가난해져야 합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뜻으로 채워가야 하는 것이지요. 또 지난 2007년 한국 주교단이 사도좌를 공식 방문했을 때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께서는 특별히 냉담교우와 청소년 사목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하길 당부하셨습니다. 위와 같은 기본적인 삶을 바탕으로 냉담교우에 대한 사목적인 배려를 보다 적극적으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장 국장 : 지난 추계 총회에서 주교님들은 담화를 통해 교황 방한의 메시지를 이어가고, 특별히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될 것을 다짐하면서 프란치스코 통장도 상징적으로 만드셨습니다. 주교단 공동 담화라는 강력한 형식을 통해서 가난한 교회로의 의지를 표명하셨기에, 앞으로 한국교회는 자기 쇄신과 가난해지기 위한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과연 이러한 의지의 천명이 실제적인 변화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 어린 시선도 분명히 있습니다. 한국교회 전체의 쇄신, 자기 변화의 노력을 더욱 가시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대주교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 김 대주교 : 아직은 낙관도 비관도 예측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교님들과 많은 성직·수도자들이 쇄신의 의지를 가지고 신자들과 함께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긍정적이지 않습니까?
교황님의 권고인 「복음의 기쁨」을 각 교구에서 성직자 수도자 교우들이 함께 공부하며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방한 중에 남기신 말씀들도 기억하고 그 정신대로 살려고 구체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쇄신을 위한 노력은 일회성 행사로서가 아니라, 일관성 있게 꾸준히 추진해야 합니다. 또한 구체적인 실천을 위해서는 우선 「복음의 기쁨」과 관련한 성경말씀과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 등을 찾아 함께 연구하고 함께 토론하는 장이 각 본당, 교구, 한국교회 차원에서 자주 마련돼야할 것입니다.
- 장 국장 :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라는 의미에 관해 좀 더 설명해주시겠습니까?
▶ 김 대주교 : 가난한 분들과 함께 하는 가난한 교회의 모습은 단순히 물질적으로 궁색하게 보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물질로 인해 우리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반복음적인 가치에서 자유롭게 되자는 의미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가난한 자들이 교회 안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난한 자’란 경제적인 빈자만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소외 계층을 포괄하는 말이지요. 저는 교회가 시대의 아픔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자로 총칭되는 사회적 약자, 그리고 그들의 상실감, 억울함을 교회가 안아야 합니다. 교회가 적극적으로 세속 안에 들어가 약자와 함께 해야 하는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하느님과 교회에 일생을 헌신하고 있는 저를 포함하여 우리 성직자 수도자들이 우선적으로 하느님과 깊이 일치하는 기도와 하느님의 말씀 선포(강론과 교리교육) 등에 온전히 투신하며 신자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삶으로써 우리 성직자 수도자 존재 자체가 ‘복음의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으로써 우리 한국 교회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에 따라 ‘기억의 지킴이’와 ‘희망의 지킴이’의 역할을 충실히 해 우리 사회에 빛과 소금으로 봉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장 국장 : 정신적인 가치의 빈곤도 이 시대 대표적인 가난의 모습일 수 있겠습니다.
▶ 김 대주교 : 물질의 유혹이 자칫 정신적인 가치를 쇠퇴시킬 수 있습니다. 이 또한 가난한 모습이지요.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교부는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돈에 집착하면 그는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이며, 돈이 많아도 그 돈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이에게 나눌 수 있는 이는 영적으로 부요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장 국장 : 교회는 복음적 소명에 따라 대사회적인 목소리를 내야하며 이는 보수나 진보의 범주를 뛰어넘는 것임을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범을 통해 이제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교회가 사회 참여와 관련된 발언을 하는 것을 ‘종교의 역할을 벗어나는 것’이라며 거부감을 표명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교회 안에는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천주교회는 어떻게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사회적 참여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 그 원칙과 실천의 양면을 모두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 김 대주교 : 물론 종교와 정치 공동체는 구별되고 각자의 고유한 영역이 존중되어야 하겠지만, 그러나 양자의 구성원 모두가 공히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종교가 사람들의 양심과 영성적인 면에 주로 치중하지만, 그러나 인간 사회의 구체적인 분야에까지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정치 공동체가 그 본 기능을 하지 못할 때는 과감히 지적하고 정도를 걸으며 국민에게 봉사하도록 하는 것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이상적인 사회를 가르치는 종교인으로서 당연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이나 행동양식도 감상적이거나 즉흥적이지 않고, 어디까지나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꿰뚫고 복음의 정신과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에 따라 시의 적절하게 드러났습니다.
이른바 보수나 진보라는 입장도 결국은 교회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은 같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자신들의 의견을 실천하는 방식이 약간씩 다른 면도 있고 문제의 핵심이나 교회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배경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또 아직도 교회가 사회 참여와 관련된 발언을 하는 것을 ‘종교의 역할을 벗어나는 것’으로 이해하시는 분들은 교회가 사회적 관심을 멀리하고 고고하고 성스럽게 성당 안에서 기도하며 고전적인 애덕 실천으로만 한정하는 입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다면 교회의 사명을 수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장 국장 :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거리로 나가고,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변방으로 나아가라고 강조하셨습니다.
▶ 김 대주교 : 제2차 공의회 초대의 화두는 교회의 현대사회의 적응이었습니다. 종교 공동체의 구성과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이 다 똑같은 ‘사람’ 아닙니까? 그렇다면 자연히 공통적으로 겹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을 제시하고 보다 나은 종교생활, 보다 나은 정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제안을 하면서 국가발전에도 이바지해야 합니다.
“거리로 나가서 파장을 일으켜라, 교회도 거리로 나가길 바란다” 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 행동하는 교회’를 강조하십니다.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도 “어느 누구도 종교가 국가나 사회 제도의 안녕에 관심을 갖지 말라거나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에 의견을 표명하지 말라고 요구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교회가 발에 흙 묻히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도 하셨지요. 복음은 성당 안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구현되는 겁니다.
교황의 한국 방문에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준비 위원회’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사무총장 마리오 토소 주교는 “정의를 위한 노력은 교회 복음화의 사명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사회와 국가의 올바르지 못한 부분을 정치에만 맡길 수 없습니다. 교회와 사제는 모든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사회통합과 사회평화, 공동선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또 사제와 신도는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해 자기의견을 자유롭게 주고받아야합니다” 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복음의 정신과 교회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숙고하며 복음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각 교구에서 ‘사회교리’에 대한 연구와 연수회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장 국장 : 교회 안에서도 이념과 확신에 따라서 편이 나눠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획일적으로 가를 수는 없지만, 교회 안에도 보수적인 진영과 진보적인 진영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문제는 이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의지가 과연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대주교님께서는 교회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이러한 입장 차이를 어떻게 해소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말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김 대주교 : 우리 사회의 대화 문화는 아직 성숙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와 다른 의견은 무조건 틀린 것으로 단정 짓고 편을 가르는 경향이 강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다름’과 ‘틀림’의 관계를 잘 구별해야 합니다. 한 가지 색깔과 모양의 꽃만으로는 아름다운 정원을 꾸미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크기와 색깔과 형태가 서로 다른 다양한 꽃들이 조화를 이룰 때 더욱 아름다운 정원이 꾸려질 수 있지 않을까요. 크기와 색깔과 형태가 다르다고 한 가지만 그 가운데 한 가지만 좋고 다른 나머지는 다 틀리다고 얘기할 수 없지 않습니까?
이른바 보수나 진보 양측이 모두 복음의 정신과 교회의 정통 가르침에 참으로 충실하다면 방법론에 있어서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갈등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이야기 하는 것은 정치 기술적인 문제나 정책이 아니라, 정치 철학적인 문제이며 정치 윤리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따라서 상호 충돌되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와 관련된 복음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이해의 폭을 넓히면서 공감대를 확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른 의견을 듣는다는 것은 나의 의견을 검증할 길도 되고 상대방이 말하는 긍정적인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기회도 됩니다. 무엇보다 대화를 통해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음적 소명에 충실하기 위한 노력을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가 조금씩 긍정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대화가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장 국장 : ‘봉헌생활의 해’를 맞아 한국교회, 특히 각 교구가 수도생활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널리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요.
▶ 김 대주교 : 사실 수도생활은 교회 영성생활의 꽃이며 보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노첸시오 3세 교황님은 전쟁 중에 다른 무엇보다도 수도자들을 가장 먼저 구출하라고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수도자들의 영성생활은 교회가 영적으로 튼튼해지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교회가 영적으로 쇠퇴하여 그야말로 일어서기 힘들 정도로 되었을 때 수도생활마저 세속적인 가치에 함몰되어갔을 때였습니다.
정말 우리 한국천주교회의 수도자들의 영성생활의 점수는 100점 만점에 몇 점이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수도생활이 튼튼해지기 위해서는 수도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교구 신부님들과 신자들의 협조와 기도도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한국교회의 영성생활 점수는 한국 수도자들의 영성생활 점수를 따라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수도생활이 녹록하진 않습니다. 수도자들 자신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는 현장에서 서로 오해하고 서로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봉헌생활의 해를 맞이해서 특별히 더 한국교회가 수도자들이 각 수도회 창설자들의 카리스마를 구현하는 본연의 삶을 통해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각 수도회의 고유한 카리스마가 존중되고, 수도자들이 기능적인 역할로서가 아니라 하느님과 교회에 온전히 헌신하는 하느님의 사람으로서의 존재자체로 ‘복음의 기쁨’을 증거하는 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장 국장 : 대주교님께서도 말씀주신 것처럼, 새해 그리스도인들이 성찰하고 실천해야할 중요한 또 하나의 화두는 ‘가정사목과 복음화’입니다. 이에 대한 실천을 위해 신자들에게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 김 대주교 : 우리는 흔히 가정교회의 모범을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마리아, 성요셉의 성가정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성가정은 세속적인 시각에서 보면 이른바 파탄이 난 가정이 아닌가요? 마리아의 잉태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 요셉이 겪어야 했던 수많은 고난의 여정을 들여다본다면요. 성가정은 낭만적인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고통을 한 번에 다 가진 가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가정을 본받는다는 것이 대체 무슨 말일까요. 우리는 온갖 고통을 한데 안고 있었지만, 그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하느님만을 바라봤던 성가정의 모습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 없는 것이 성가정이 아닙니다. 어려움 중에서도 하느님을 향한 시선을 떼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성가정입니다.
- 장 국장 : 올해는 남북한 분단 7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갈라져있고 점점 더 이질화되어가는 우리 민족이 통일을 위해서 어떤 길을 가야하며, 특별히 교회는 남북 화해와 일치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김 대주교 : 남북관계가 이대로 고착상태에 빠져선 안 됩니다. 화해와 평화 공존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원칙이란 하나의 기준으로서 좌우로 조금씩 부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좌우로 조금씩 흔들릴 수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하나의 원칙이 만고불변이라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유연성 있게 적용하는 것이 오히려 그 원칙의 정신에 부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경제적인 측면뿐 아니라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해서도 자주 만나 오해된 부분이 있다면 풀고 서로 잘못이나 실수가 있었다면 화해하면서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번영을 위해 전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남북관계의 개선을 바라는 남북한 당국자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통일이라는 정책에만 의존하기 보다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정부와 국민이 함께 협력하는데 우리 신자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오래 전부터 실시해온 기도 모임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시하며 북한의 교우들과 자주 만나서 신앙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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