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지난 1968년부터 해마다 1월 1일을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내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48차 ‘세계 평화의 날’을 맞아 담화를 통해 “모든 사람을 더 이상 종이 아니라 형제자매로 여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지난해에는 ‘형제애, 평화의 바탕이며 평화로 가는 길’을 주제로 담화를 발표, 전 세계 모든 민족이 참다운 형제애를 발견하고, 경험하고, 선포하고, 증언할 것을 당부한 바 있다. 다음에서는 새해 첫 날,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담화를 요약, 소개한다.
인류를 위한 하느님 계획에 귀 기울이기
‘더 이상 종이 아니라 형제자매입니다’라는 올해 담화 주제는 바오로 성인이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에서 선택했습니다. 오네시모스는 전에는 필레몬의 종이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바오로에 따르면 형제라고 여겨질 자격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제자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것은 새로운 탄생을 의미합니다. 이는 가정생활에 바탕이 되는 유대와 사회생활의 토대인 형제애를 낳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내리시어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형제자매로서 본질적으로 서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형제애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인류 가정을 키워나가는 데에 근본이 되는 관계망을 형성합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창세기에 나오는 최초의 창조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탄생 사이에는 죄의 부정적인 현실이 존재합니다.
인류 가정의 근원에 관한 이야기에서, 하느님과 아버지 상과 형제에게서 멀어지는 죄는 친교에 대한 거부의 표현이 됩니다. 이는 노예살이의 문화를 만들어내, 그에 따른 영향들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집니다. 여기에는 타인에 대한 거부, 인간 학대, 존엄과 기본권의 침해, 그리고 불평등의 제도화가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의 노예살이의 여러 모습
유사 이전부터 여러 사회에는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삼는 현상이 있어 왔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노예 제도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법제화 되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인류의 의식이 긍정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인간성을 거스르는 범죄로 여겨지는 노예제도가 전 세계적으로 공식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 어린이와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자유를 빼앗기고 노예살이와 다름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 분야에서 노예 노동을 하는 미성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또 수많은 이민자의 삶의 처지를 생각합니다.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 때문에 불법 체류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 합법적으로 체류하기 위해 비인간적인 생활과 노동의 조건을 감내하고 있는 이들, 성 매매를 강요당하는 이들과 성 노예들, 강제 혼인에 내몰린 여성들, 정략결혼을 위해 팔린 여성들, 남편의 사망으로 그들 스스로 동의를 하거나 거부할 권리 없이 사망한 남편의 친척들에게 상속된 여성들을 생각합니다. 장기 적출, 강제 징집, 구걸, 마약의 생산과 판매와 같은 불법 행위, 국제적인 위장 입양을 위한 인신매매의 대상이 되는 모든 미성년자와 성인들, 테러 집단에 납치되고 구금되어 이용당하는 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예살이의 몇 가지 근본 원인
노예살이는 인간을 물건처럼 다룰 여지가 있는 인간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죄가 인간의 마음을 타락시키고 우리를 창조주와 이웃에게서 멀어지게 할 때, 우리의 이웃은 더 이상 우리와 동일한 존엄을 지닌 존재로, 곧 똑같은 인간성을 지닌 형제자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물건으로 취급받습니다.
현대 노예살이의 형태에는 또 다른 원인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는 무엇보다 빈곤과 저개발과 배척, 특히 여기에 교육 기회의 부재, 또는 드물거나 아예 없는 일자리가 더해지는 경우를 들고 싶습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는 이들의 부패를 노예살이의 원인으로 꼽고자 합니다.
이는 사람이 아니라 돈이 경제 제도의 중심에 있을 때 발생합니다.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어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책임이 있는 인간이 모든 사회 제도나 경제 제도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물신이 인간의 자리를 대신할 때 가치의 전복이 일어납니다.
노예살이의 또 다른 원인들로는 무력 분쟁, 폭력, 범죄, 테러가 있습니다.
노예살이 극복을 위한 공동 노력
인신매매와 불법 이민 거래의 실상과 알게 모르게 노예제의 모습을 한 여러 현상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우리는 이러한 일들이 전반적인 무관심 속에 벌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는 대체로 맞는 말이지만, 저는 수도회들, 특히 수녀회들이 인신매매 피해자들을 위하여 오래 전부터 묵묵히 기울여 온 대단한 노력들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수도회의 활동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피해자들을 돕고, 그들의 심리적 교육적 재활을 위해 일하며, 그들이 지금 살고 있는 사회 또는 떠나온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인간 착취의 참상을 없애지 못합니다. 제도적 차원에서 예방, 피해자 보호, 가해자에 대한 사법 처리라는 삼중의 노력 또한 필요합니다.
국가들은 이주, 취업, 채용, 기업의 해외이전, 노예 노동 상품의 판매에 관한 국내법들이 인간의 존엄을 실질적으로 존중하고 있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정부 간 기구들은 인신매매와 불법 이민 거래를 총괄하는 조직범죄의 초국가적 연계망과 맞서 싸우기 위해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협력해야 합니다.
기업들은 근로자들에게 정당한 근로 조건과 적정 임금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모든 사람은 “구매는 단순히 경제적인 행위가 아니라 언제나 도덕적인 행위임을”인식해야 합니다. 시민 사회단체들은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워 노예살이 문화에 맞서 싸우고 이를 근절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독려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형제애의 세계화’로 희망을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 사랑의 진리를 선포”하면서 교회는 인간의 진리를 바탕으로 한 사랑의 활동을 끊임없이 펼쳐왔습니다. 교회는 모든 이에게 이웃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도록 이끄는 회개의 길을 보여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회개는 이웃이 누구이든 그를 인류 가정 안에서 형제자매로 받아들이고, 진리와 자유 안에서 그의 내적인 존엄을 인정하도록 이끕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 노예살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역할과 책임 안에서 형제애를 보여주는 행동을 하라고 권고합니다.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인신매매의 피해자일 수도 있는 사람을 만나거나 상대할 때, 또는 타인을 착취하여 생산한 것이 확실해 보이는 상품의 구매를 망설일 때, 개인이나 공동체로서 무엇을 해야 한다고 느낍니까?
시민단체에 참여하거나 일상의 작은 몸짓들, 예를 들어 따뜻한 말 한 마디나 인사나 미소를 건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은 몸짓이 얼마나 소중한지요! 이는 돈 한 푼 안 들면서도 희망을 주고 길을 열어 줄 수 있습니다. 또 사각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삶을 이 현실에 맞서도록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한 공동체나 국가의 능력을 넘어서는 세계적인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에 버금가는 규모의 동원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저는 선의의 모든 사람과 고위 당국자를 포함하여 가까이에서나 멀리에서나 노예살이의 참상을 목격하는 사람에게 호소합니다. 이 악의 공범이 되지 말고, 한 인류 가정 안의 형제자매로서 마땅히 누려야 하는 자유와 존엄을 빼앗긴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 것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너는 네 형제에게 무슨 짓을 하였느냐?”하고 물으실 것임을 압니다. 오늘날 수많은 형제자매들의 삶을 짓누르는 무관심의 세계화에 맞서, 우리 모두 연대와 형제애의 세계화를 위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연대와 형제애의 세계화는 그 형제자매들에게 희망을 되찾아 주고, 그들이 용기 있게 우리 시대의 문제들을 헤쳐 나아가며, 새로운 전망을 얻게 해 줍니다. 이 새로운 전망은 하느님께서 바로 우리 손에 맡기신 것입니다.
[신년 특집]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요약
프란치스코 교황, 1월 1일 세계 평화의 날 맞아 ‘더 이상 종이 아니라 형제자매입니다’ 주제로 발표
자유·존엄 빼앗긴 ‘이 시대 노예들’에게 형제적 관심을…
불법 체류·강제 징집·인신매매 등 현대에도 유사한 ‘노예살이’ 반복돼
빈곤·저개발·교육 부재 등 원인 다양
사람보다 돈이 중심될 때 문제 발생
발행일2015-01-01 [제2925호, 3면]
▲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48차 ‘세계 평화의 날’을 맞아 담화를 발표했다. 사진은 강론을 펼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C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