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수원교구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여러분, 교구는 교구 설정 50주년을 마치면서 ‘소통과 참여로 쇄신하는 수원교구’라는 부제의 「50주년 교서」를 발표했습니다. ‘소통’은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절실히 요청되는 가치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웃과 소통하도록 창조됐고, 이웃과 소통함으로써 자신을 완성하도록 부르심 받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표방하는 소통은 먼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 살기 위해서는 다가오시는 그분께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제1부 하느님의 소통
성삼위 하느님의 위격적 친교와 소통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은 우리의 눈을 하느님 본성의 심오한 신비에로 향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본성적으로 소통하는 사랑이십니다. 인간을 창조하실 때도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서로 협력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기도하실 때에도 하늘에서 성령이 내려오시고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말씀이 들려오면서 성삼위 하느님의 위격적 친교가 드러났습니다.
하느님의 자기 소통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한 실현
하느님의 소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으심과 부활하심에서 충만한 실현을 이룹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소통방식에서 비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비움은 자기과시나 교만과는 정반대인 낮춤이고 겸손이며 순종입니다.
인간, 소통하는 존재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이 만들어졌다는 말씀은 사람이 나날이 하느님을 닮아 갈 수 있고 닮아 가야 하는 귀중한 존재임을 일깨워줍니다. 사람은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위격적 친교와 일치 안에서 창조된 사람은 소통을 위한 존재이며 소통하는 존재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온 인격, 곧 ‘말과 행위’로 세상 안에서 자기 증여적 하느님의 소통을 실현시키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결단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주님의 뜻을 따를 것인지 자신의 뜻을 따를 것인지 결단을 내리도록 촉구합니다.
제2부 이웃과의 소통
이웃에게 다가서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과 결합하기 위해 먼저 아버지를 떠나 이 세상에 자발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내가 먼저 이웃에게 다가가는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성령께서는 이웃에게 다가가는 힘을 주십니다. 가정·본당 공동체·이웃과 관계 안에서, 특별히 소외 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향해 내가 먼저 다가서는 자세를 지녀야 하겠습니다.
자신을 낮추기
사람이 되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소통하시는 방식은 ‘낮아짐’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기로 맹세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위해 파견받기 이전에 먼저 자신을 낮추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자신을 내어주기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내어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가장 소중한 아드님을 내어주시면서 세상과 소통하셨다는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가 이웃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내어주고 자신을 죽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주는 사랑은 하느님의 소통과 이웃과의 소통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열기
우리는 고난이나 배척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당신 생명을 내어주신 이유는 특정한 몇몇이 아닌 ‘모든 죄인’을 용서하시고 다시 받아들이기 위함이셨습니다. 이는 우리도 용서받아야 하는 죄인임을 깨닫고 모든 이웃을 향해 항상 자비로운 마음으로 열려있어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용서가 없는 소통과 친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제3부 사랑과 생명의 소통을 요구하는 시대
소통을 방해하는 세속화의 물결
세계는 탈현대화를 표방하면서 세속화의 거대한 물결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특히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황금만능주의 사조는 퇴폐적 문화의 확산을 부채질하고 인간의 생명까지도 위협합니다. 뿐만 아니라 경쟁의 문화가 자리하면서 가난하고 약한 사람은 점점 자리를 빼앗기고, 힘 있는 사람만 대우받은 사회가 돼갑니다. 이런 세속화의 물결은 사실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인간소외’와 ‘인간 존엄성 상실’이라는 상처를 가져옵니다.
불통을 소통으로 변화시키는 신앙의 열정
우리는 세월호의 참사를 겪으면서 참된 인간의 가치에 대해 눈을 뜨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에 세상의 논리가 아니라 신앙의 논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중받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도 존엄한 인격으로 인정받는 사회, 도덕적 가치가 우선시 되고, 영적인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식이 더욱 확산됐습니다. 우리 교구는 하느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 참된 행복으로 이끄는 그리스도의 빛을 향해 더욱 매진할 것입니다.
가정의 소통 회복
소통을 배우는 가장 원초적인 공동체가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이 소통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사회에 나가서도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정의 모든 구성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모여 인격적 친교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가족 모두가 신앙 안에서 마음을 열고 서로 다가가 사랑을 내어주도록 프로그램을 개발해 성가정을 이룰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소공동체의 소통 회복
소공동체는 함께 모인 이들이 성령과 형제들에게 마음을 열어 ‘말씀’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쁨을 체험하고, 그 기쁨을 서로 나눔으로써 친교를 이루는 공동체입니다. 소공동체 모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체험하는 일입니다. 하느님과 이웃과의 소통의 매개체인 소공동체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성경교육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마련돼야 합니다. 그리고 소공동체 안에서 얻은 뜨거운 감동과 하느님 사랑을 다른 형제들에게 다가가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전해주도록 해야 합니다.
이웃과의 소통 회복
그리스도 예수님의 친교 방식은 상대에게 부족한 무언가를 먼저 인식하고 그 필요를 채워주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 내에서 그리스도와 소통하는 신앙인들이 세상을 향해 무엇을 내어줄 수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과의 소통을 통해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보호해주고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다양한 복지 서비스 제공을 위한 소통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나눔, 곧 내어줌이 소통의 시작입니다.
결론
소통, 그 아름다운 친교
하느님은 당신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소통함으로써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삼위일체의 내적친교를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 모두에게 확장시키셨습니다.
따라서 소통의 본질은 우리끼리의 단절된 친목의 회복만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들을 향해 끊임없이 확장되어 나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소통은 더 깊고 더 넓은 친교에로 우리 모두를 이끕니다. 소통이 바로 아름다운 친교입니다. 하느님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가 빛 속을 거닐고 있다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또한 그분의 아들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온갖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줄 것입니다.
평화의 모후이시며 순교자들의 모후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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