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날, 경북 경주시 산내면 산자락에 자리 잡은 한 의원(요양원)에서 이예슬(29, 가명)씨를 만났다. 털모자에 마스크, 목도리까지 꽁꽁 싸맨 이씨 모습이 다소 힘겹게 느껴졌다. 단지 날씨가 추워서만은 아니었으리라. 폐암 투병 중인 그에게 찬바람이 좋을 리 없기 때문이다.
“무기력하고 심적으로 불안할 때가 많아요. 어떤 때는 잠도 잘 오지 않고요. 기운이 없을 때는 수저 들 힘조차 없는걸요.”
혼자서는 제대로 된 끼니를 챙기기 어려운 데다, 돌봐줄 가족이나 친척도 없어 요양원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목숨 걸고 북한을 탈출, 남한으로 온 새터민이다. 수차례 위험한 고비를 넘기며 중국과 태국을 거쳐 2009년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탈북한 지 3년 만이었다.
부모님 생각이 날 때마다 몹시 고통스러웠지만 새 삶에 대한 희망과 훗날 통일이 되면 성공한 모습으로 가족을 만날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이씨는 간호사를 꿈꾸며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남한에 와서 배려를 받은 만큼 간호사가 돼 자신도 사랑을 베풀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강한 의지로 헤쳐나갔다. 밝고 명랑한 성격 덕에 학교생활 적응도 순조로웠다.
그의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운 건 2013년 여름. 이전부터 건강에 이상을 느꼈지만, 학업에 몰두하느라 방학이 돼서야 병원을 찾았다. 대장암 4기에 이미 간까지 암세포가 전이된 상황. 급히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았다. 일 년여 동안 어렵사리 치료를 마치고 건강을 회복, 지난 가을 복학할 수 있었다.
다시 공부할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이번엔 폐에서 암이 발견됐다. 또 한 차례의 수술. 다시 시작된 항암치료. 길어지는 투병생활에 지칠 법도 하지만, 그는 반드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간호사가 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많이 아팠던 만큼 환자 마음을 더 잘 이해할 것 같다”는 이씨. “간호사가 되면 그들을 더 잘 보살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간호사의 꿈이 멀어질 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이씨를 괴롭힌다. 가족도 없이 혼자서 투병생활 하다보니 외로움도 커져만 간다.
“가족 생각이 나면 더 힘들고 마음 아파서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 애써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이씨의 수입은 기초생활수급비 40만 원과 대구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를 통한 지원금 10만 원이 전부. 이 비용으로 임대아파트 월세와 관리비를 내고 나면 항암치료비와 약값, 요양원 비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그나마 중증환자로 인정받아 40만 원을 더 지원받고, 여기에 요양원 측 배려로 당분간 입원비를 삼분의 일 가량만 내고 있어 겨우 버티는 중이다. 치료가 끝나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과 비용이 들지 알 수 없기에 더 막막하다. 그런데도 이씨는 꼭 나을거라 자신하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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