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요
구약 전편에 흐르는 중심사상은 하느님이 역사를 손수 이끄시는 주관자시라는 믿음이며 이제부터 우리가 보고자 하는 여호수아기에도 이 사상이 전반적으로 흐르고 있다.
여호수아기는 기원전 1천 2백 50 ~ 1천 2백년경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의 영도하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침입하여 정복한 영토를 12지파가 분배하는 과정을 줄거리로하고 있으며 책의 명칭도 책의 중심인물의 이름을 따서 「여호수아기」라고 한다.
이 가나안 정복이란 가나안 전 국토를 완전히 점령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전략하에 가나안의 군사적 요지를 우선 파과하고 전략적 요새지들을 점령함으로써 적군을 독안에 든 쥐같이 포위했다. 그 후 이 포위된 성들의 주민들이 개별적으로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투항해오기도 하고 많은 경우에는 가나안 원주민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로 이웃하여 살았다.
이 가나안 정복에 대한 이야기는 구전으로 수백년 종안 전래되어 내려오다가 더러는 문서화 되어 읽혀지기도 했다. 이것이 기원전 6백 50 ~ 6백년경 신명기적 편집인에 의해 수집되어 가나안 정복기사인 여호수아기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정복에 대한 전쟁 이야기는 역사에 근거한다.
2.목적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하나의 땅(국토)을 마련해 주시겠다고 한 약속에 충실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있다. 하느님께서 당신 약속을 이행하셨음을 지적하면서 또한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응한 그 계약의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권고를 함축하여 전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한 순례(출애급~신명기)가 고달픈 고난의 역사였듯이 또한 이 가나안 땅의 정복은 길고도 처참한 전쟁의 역사였다. 이러한 고난의 여정 속에서도 끈질기게 간직해 온 야훼 신앙은 드디어 가나안 정복이라는 승리의 역사를 이룩하였고 이는 하느님의 위대한 구원의 행위바로 그것인 것이다.
3.신학적 의미 (신명기적 역사의 일부)
신명기와는 다른 시대에 다른 저자에 의해 편집 저술되었는데도 이책의 줄거리는 신명기에 묘사된 마지막 사건들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신명기 34,1~9」에서 모세의 죽음과 여호수아의 영도권 계승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여호수아기 1장」에서는 모세가 죽은 다음 여호수아가 계승되어 영도자로서 민족들을 이끌고 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즉 이스라엘의 군인들이 요르단 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침공해가기 전에 모압 평원에 천막을 치고 야훼 신앙으로 무장하여 정복할 땅을 바라보면서 전쟁 때 필요한 준비가 완료되었는지 점검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와 같이 같은 시대와 장소ㆍ 인물들이 연장되면서 신명기와 실질적으로 연결된 여호수아기의 내용과 교훈 역시 율법의 정신 및 예언자적 사고에의 한 가르침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여호수아기의 정복사업은 인간 여호수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야훼의 은혜로운 역사 행위의 결과이며 야훼의 말씀에 충성스러운 순종에 따른 성성(聖性)과 불순종에는 벌을 면치 못할것이라는 신명기적 정신에 따라 기술하고 있다.
4.주제
중심 주제는 「1,1~9」와 여호수아의 고별사인「22장ㆍ23장」에 나타나고 있는데 우주만물의 주재자이신 야훼 하느님의 주권이다. 우리는 영토를 정복하기 위한 이 전쟁의 이야기 속에서 그 무자비한 살상을 보고 때로는 곤혹스러움까지 느낄지 모르지만 이 전쟁은 야훼신앙에 대한 척도로서 야훼 직접 지휘하시어 이스라엘을 이끄시므로 이스라엘의 적은 바로 야훼 하느님의 적이므로 추호도 용납할 수 없다는 사상이다. 이들 이스라엘 군인들은 聖別되어 축성되었고 지도자는 야훼의 뜻을 군인들에게 선포하였다.
따라서 야훼를 전적으로 의지하여 그 뜻을 따라 싸우면 야훼께서 반드시 승리를 가져다 주시나 불순종 했을때는 야훼께서 손을 떼시고 징벌을 주신다. 그러므로 실제 싸움의 주동자는 야훼이시므로 모든 전리품은 야훼의 것이며 인간들의 이익을 의해 쓸수 없다고 하는 아간의 불순종 이야기(7,1~26)는 우리에게 큰 경고가 아닐수 없다. 이렇게 믿고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승리하고 번영을 누린다는 믿음의 상속을 신약시대까지 넘겨받는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여 구원의 상속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살지 않으면 결코 하느님을 만날수 없을 것이다(요한14, 6). 자비하시고 분노에 더디신 야훼 하느님께서 여호수아기를 통해 약속을 이루어 주셨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빠스카를 통해 참生命을 허락하신 이 구원의 시기에 우리들이 할바를 찾아 얻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쁨에 동참할 자격을 얻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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