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앉아있는 이 자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쫓겨난 자리이고, 자본의 탐욕이 무엇인지 절박하게 알려주는 자리이며, 다음 달이면 6주기를 맞는 용산참사의 현장과 밀접하게 연결된 장소이자, 집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겪게 될 미래를 보여주는 예표(豫表)의 장소입니다.”
12월 25일 오전 서울 중구 순화동에 위치한 ‘순화 1-1 도시환경정비사업지구’. 이강서 신부(서울 삼양동선교본당 주임)의 강론 마디마디에는 아픔과 함께 깊은 공감이 배어 있었다.
이날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위원장 임용환 신부)가 마련한 ‘집 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성탄현장미사’에는 임용환 신부와 이강서 신부를 비롯, 문규현 신부(전주교구) 등 가난의 현장에서 소외된 이들과 아픔을 나눠온 사제들과 명례방협동조합, 전국철거민연합, 용산진상규명위원회, 순화동 철거민 등 120여 명이 함께했다.
이강서 신부는 미사 강론에서 “우리의 관심이 권력과 재물, 건강과 학력 등에 온통 쏠려 있기 때문에 약한 사람과 보잘 것 없는 사람, 학력이 모자라는 사람과 가난한 사람은 주목 받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성탄의 기쁨을 나누는 이 날은, 가장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잔치라는 사실을 기억하자”고 당부했다. 이어 이 신부는 “가난한 사람들이 쫓겨난 자리에 하느님께서 거처하신다는 사실을 장엄하게 고백하는 날이 성탄”이라며 “우리가 마주대하는 익숙한 얼굴들이 바로 우리와 함께 살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하느님이며, 성탄의 참 의미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신부는 또 “가난 때문에 구질구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느님의 눈으로 재발견하고, 그분들이야말로 하느님의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게 될 때 우리는 신앙인의 자리로 되돌아오게 될 것”이라며 “가난한 사람들이 고달픈 삶을 견뎌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연대’이고, 우리가 함께 기억하고 연대할 때 가난한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날 미사에는 지난 2009년 일어난 용산참사 때 부상을 당한 지석준(안드레아·44)씨와 고(故) 윤용헌씨의 부인 유영숙(루치아·55)씨도 참례했다.
지난 2007년 순화동에서 운영하던 가게를 강제로 철거당한 지씨는 같은 처지에 처한 용산지역 철거민들과 연대하기 위해 2009년 1월 20일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위치한 남일당 망루에 올라 점거농성을 벌이던 중 화재로 옥상에서 추락했다. 현재까지 열네 차례 수술을 받으며 목발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지씨는 “이곳에 오니 지난 2007년 수백 명의 용역깡패가 들이닥쳐 내 가게를 비롯해 상가를 강제로 철거하던 모습이 떠오른다”며 “아물지 못한 상처처럼 진상이 규명되지 못한 용산참사 역시 현재진행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용산참사로 남편을 잃은 유영숙(루치아·55)씨도 “순화동은 내 가족이 행복하게 지내던 자리였지만, 동시에 가슴 아픈 자리이기도 하다”며 “이 미사에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어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날 미사가 봉헌된 ‘순화 1-1 도시환경정비사업지구’는 용산참사 전인 2008년 3월 강제철거가 벌어진 곳이다. 철거 이후 조합원간의 분쟁과 소송 등 갈등이 첨예화되면서 5년 여 간 재개발사업이 중단돼오다 지난 2012년 12월 시공사 변경 후 올해 봄부터 본격적인 공사가 재개됐다. 주택과 식당 등을 포함해 60여 세대가 살던 이 구역에는 오는 2016년 7월까지 지하 5층, 지상 22층 규모로 공동주택 2개동과 오피스텔 1개동이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 빈민사목위, 순화동 재개발지역서 성탄미사
구유에 누우신 주님 따라 가장 소외된 이들 곁에
용산 참사 전 강제철거 이뤄진 곳
“함께 연대… 희망 잃지 말아야”
발행일2015-01-04 [제2926호, 7면]
▲ 12월 25일 오전 서울 중구 순화동 1-1 재개발구역에서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가 ‘집 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성탄 현장미사’를 봉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