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다소 평이했나보다. 처음에는 필자의 눈길이 본 회칙에 선뜻 가지 않았다. 솔직히 ‘허’를 찔린 듯한 느낌마저도 있었는데, 뮌헨-프라이징 대교구장 시절의 사목표어 “Cooperatores Veritatis”(진리의 협조자)가 말해주듯 그리고 24년간을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봉직해 오신 요제프 알로이스 라칭거(Joseph Alois Ratzinger) 추기경님의 ‘과거’ 때문에 회칙의 제목이 다소 식상한 감도 주었다. 게다가 ‘유럽의 재복음화’를 위해 베네딕토로 명명하신 터라 발표하실 첫 회칙은 긴박한 생명윤리나 무분별한 상대주의 혹은 세속화에 대한 저항 등을 담은 문헌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국내언론에서도 보도된 것처럼, 실제로 교황님께서는 2005년 4월 19일 취임하신 그해 이탈리아 정부가 6월 12일부터 13일까지 인간 배아에 대한 치료 복제와 실험의 타당성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자 “인간 배아는 하느님이 주신 생명이며 생명은 투표대상이 아니기에” 반생명적 국민투표를 보이콧해 기권하도록 호소하셨고 그 결과 투표율 미달로 부결시키신 적도 있었던 터였다.
하지만 문헌을 접해보면, 복잡하고 긴급한 현대사회의 문제를 가장 단순한 진리 즉 ‘사랑이신 하느님’으로 명쾌하게 풀어주셨음을 즉시 깨닫게 된다. 지면이 매우 제한적인지라, 이 회칙의 내용을 여덟 가지의 가르침으로 요약해보고자 한다. 더 자세한 것은 가톨릭대학교 사목연구소의 제15회 학술심포지엄(2007. 11. 10.)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을 참조할 수 있겠다.
가르침 1. 회칙의 취지: 종교·종파 간 갈등의 유일한 극복 방법은 사랑 체험
교황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할 인간의 새 힘을 불러일으키고자》(1항 §3) 이 회칙을 발표하신다고 밝히는데, 왜 하필 취임 첫 해, “새 힘”의 필요성을 느끼셨을까? 바로 “복수나 심지어 증오와 폭력의 명분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결부시키는 오늘날”의 시대적 위기상황 때문이다.(참조: 1항 §3)
사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혹은 ‘알라의 이름으로’ 혹은 ‘여호아의 이름으로’ 서로 대립해 가해자와 피해자 역할을 수시로 바꿔가면서 증오, 폭력, 복수를 행하고 있다. 늘 불안한 팔레스타인 정황이 그렇고, 2001년 미국의 9·11 항공기자살테러, 게다가 2004년 6월 이라크에서 처형된 한국개신교도 김선일 사건이 그렇다.
이렇게 단언하신다:
《사랑을 체험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의 빛이 세상에 들어올 수 있게 하십시오. 이것이 제가 이 회칙을 통하여 여러분께 드리고자 하는 권고입니다.》(39항)
그리고 당시 기자회견의 형식으로 회칙을 반포(2005.12.25)하신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배석한 ‘Cor Unum’(한마음) 교황청 평의회 의장 폴 요제프 코르데스(Paul Josef Cordes) 대주교의 인터뷰에서도 이런 취지는 확인되었다:
《…구체적인 예: 최근 쓰나미 참극에서, 가톨릭 신자들 편에서 발휘된 합법적인 행위와 함께 우리는 폭넓게 대응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카리타스 연맹”(Confederazione Caritas)은 단독으로 미화 4억 달러 상당을 모을 수준이었으며, 이미 짜임새 있게 사용되었습니다. 그것은 인도적 필요에 직면해 애덕의 힘을 인상적인 방법으로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이 가난한 이들을 위해 침묵 속에 행한 것이 얼마인지는 기억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2. 신사숙녀 여러분, 이것들은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의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를 오늘 소개하기 위한 명백한 전제조건들이었습니다. 바로 당신 전임자들처럼, 지금 교황 성하께서도 이런 교도권의 첫 문헌과 함께 막 시작하신 당신의 교황직무의 기본 노선들을 설계하고자 하십니다. 동시에 명백히 이해되어야 할 것은 오늘의 회칙 본문이 아예 애덕 활동에 대한 첫 번째 회칙이라는 점입니다.…》 Intervento di S.E. Mons. Paul Josef Cordes, Presidente del Pontificio Consiglio “Cor Unum”, in: Conferenza Stampa di Presentazione della Prima Enciclica del Santo Padre Benedetto XVI “Deus Caritas Est”(2006. 1. 25.), nn. 1-2, 출처: http://212.77.1.245/news_services/bulletin/news/17877.php?index=17877&po_date=25.01.2006&lang=it.
▲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자신의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를 통해 복잡하고 긴급한 현대사회 문제를 가장 단순한 진리 즉 ‘사랑이신 하느님’으로 명쾌하게 풀어주고 있다. 사진은 2013년 1월 시리아 국경 근처 요르단의 자타리 난민 캠프에서 시리아 난민들이 구호물품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 【CNS 자료사진】
가르침 2.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그리스도와의 만남
“그리스도인 됨”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너무나 세상을 사랑하신 나머지 내어주신 하느님의 외아들(요한 3,16)과의 만남”이라고 단언하신다. 그러한 하느님의 사랑은 이제 “계명”으로서가 아니라 “사랑의 은총에 대한 응답”으로서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도록 재촉하는데,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이다.(참조: 1항, §2)
가르침 3. 에로스와 아가페 그리고 가장 철저한 사랑: 예수 그리스도
교회가 전통적으로 극히 꺼리던 단어 “에로스”는 “절제되고 정화되어야 할 상승의 힘”인데도 “남녀 간의 성적인 사랑”으로 축소되어 사용되었고 반면 그리스인들조차도 잘 사용하지 않던 단어 “아가페”를 구약 성서가 선택한 본뜻은 “자아도취가 아니라 다른 이를 참되게 발견하는 사랑”이고 “이타적이며 신적인 하강의 힘”이었다. 그러기에 두 단어는 “서로 다른 차원을 가진 하나의 실재”라는 것이다.(참조: 1-8항)
그러므로 하느님의 사랑은 “에로스이면서 동시에 아가페”인데(참조: 9-11항), 그 하느님의 “가장 철저한 형태의 사랑”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신 나자렛 예수님이시다. 그분이 세운 성체성사를 통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이제 참으로 하나”가 될 수 있기에 ‘계명’으로서의 사랑도 가능해지며 그 계명을 잘 지키기 위해 ‘지금 여기서’ 《교회는 신자들의 일상생활에서 가까운 것과 먼 것의 관계를 언제나 새롭게 해석해줄 의무가 발생》(15항)하기도 한다고 지적하신다.
가르침 4.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불가분 관계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말쟁이”(1요한 4,20)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사랑은 그 속성상,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은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도록 의지적으로 일치함으로써 ‘우리’가 되려고 한다고 가르치신다. 계속되는 하느님의 사랑에 감화되어 이웃 사랑을 멈출 수 없기에, 사랑의 이중 계명 즉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상호 불가분의 관계가 된다고 강조하신다.(참조: 16-18항)
이동호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88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로마 라테란대학교 알퐁소대학원에서 윤리신학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 오류동본당 주임신부를 맡고 있으며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교육 소위원장으로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