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특별히 동방에서 온 박사 세 명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는 것을 통해 그분의 탄생이 알려지게 된 것을 기념합니다. 마태오 복음이 전하는 동방 박사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이 정확히 어디 출신인지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들의 경배는 마태오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잘 나타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와서 이렇게 묻습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은 마태오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마태오는 예수님의 탄생을 왕의 탄생으로 전합니다. 유다인들이 기다려 온,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는 마태오에게 ‘왕’의 모습이었습니다.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랐던, 실제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나타나 그들을 이끌어 줄 것이라는 기대를 담고 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대로 베들레헴을 찾아 예수님을 만납니다.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땅에 엎드려 경배하는 동방 박사들의 모습이나 아기 예수님께 선물을 바치는 것은 왕을 대하는 모습입니다(이사 60,1~6 시편 72,10~11). 오늘 우리는 이 내용을 제1독서와 화답송에서 듣습니다. 구약성경의 약속과 예언은 이제 아기 예수님의 탄생으로, 왕으로 오시는 모습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마태오 복음은 이야기합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예수님의 탄생은 하느님의 신비가 전해지는 사건이었습니다. 더 이상 하느님은 당신의 신비를 감춰두지 않으시고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십니다. “나는 계시를 통하여 그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예수님 탄생은 하느님 계시의 절정입니다. 이제 더 이상 하느님은 누군가를 통해서가 아니라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해 직접 사람들에게, 우리에게 신비를 알려줍니다. 그렇기에 성탄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은 기쁨입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아드님을 통해 우리에게 감추어진 모든 것을 알려주시고, 우리와 인간과 인간이 하는 방식으로 소통하신다는 것은 큰 기쁨이자 감동적인 일임에 분명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 기쁨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라.”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은 지난해 교황님의 한국 방문의 주제어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감동과 기쁨을 생각해 봅니다. 교황님의 방문으로 사람들에게 주었던 희망과 위로를 생각해 봅니다. 여전히 이 모든 것들은 우리 안에 남아있습니다. 하물며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에게 알려졌다는 것은 얼마나 더 큰 감동이며 기쁨이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이 기쁨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 기쁨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기쁨의 삶은 신앙인들을 나타내는 가장 큰 특징일 것입니다. 이 기쁨은 현실에서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의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기쁨입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는 복음의 말씀처럼 예수님의 공현이 우리에게도 더없는 기쁨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도 자신들의 예물을 드렸던 동방의 박사들처럼 우리의 삶 안에서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 바칠 예물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이태리 로마 성서대학(Pontificio Istituto Biblico) 성서학 석사학위를,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성서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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