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 베들레헴의 ‘예수님 탄생 제단의 별’.
성경에는 점성술사들이 과히 긍정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하느님은 당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방 임금들도 도구로 사용하시고(예레 43,10) 때로는 이방의 점술도 사실을 말하게 하신다(에제 21,26-28). 그래서 이 현인들은 구세주의 탄생을 알아보고 경배한 이방 세계의 대표자들이며, 예수님을 성자로 받아들일 이방인들의 예표가 된다. 동방 박사들은 별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왔으며(마태 2,1), 미카 5,1에 근거한 조언을 듣고 베들레헴까지 찾아갔다(마태 2,6). 이들은 헤로데도 알현했으나, 다시 와달라는 그의 부탁에도 돌아가지 않았다(마태 2,12).
▲ 이탈리아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구유 제단’.
스바 여왕 또한 선물로 금과 향료 등을 가져왔다. 곧 마태오 복음은 다윗 후손 예수님과 다윗 아들 솔로몬의 공통점을 부각시키려 했던 것 같다. 솔로몬, 곧 ‘쉴로모’의 어근은 평화를 뜻하는 ‘샬롬’이다. 솔로몬은 이름값을 하여 그 시대에 전쟁이 없었다. 아기 예수님도 ‘평화의 군왕’으로서, 솔로몬을 능가하는 ‘끝없는 평화’를 가져오셨다(이사 9,5). 동방 박사들은 아기를 찾아내자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는데, 이것은 임금에게 행해지는 예의였다(1사무 24,9 1열왕 1,16). 페르시아 왕실을 섬긴 현인들이 한낱 아기에게 무릎을 꿇었음은 그들에게 배인 겸손과 진리를 알아보는 혜안을 드러내 준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베들레헴 탄생 성당의 구유 제단이 바로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은 장소로 전해진다. 그러나 전승에 따르면 실제 구유는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으로 옮겨졌으므로, 베들레헴의 구유 제단은 기념 제단이다.
지성과 미덕 대신 감각적 욕망이 지배하는 요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우쳐주는 동방 박사들의 행보는 큰 교훈이다. 세속적인 처세술로는 권력을 쥔 헤로데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 더 이익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동방 박사들은 겸손과 혜안으로 진리를 분별했기에 유다인들에 앞서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렸던 것이다.
김명숙씨는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