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식으로는 팔첩간(八疊間)이라하는 왜돗짚요 여덟장이 깔린 적산가옥의 한방에 아마 다섯 세대는 됨직한 피난민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남자라고는 중병에 걸린 듯 미동을 못하는 노인과 조무라기 말고는 눈에 뜨지 않았다. 장정들은 중학생까지도 남자들만이 따로 모여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고 기석도 그속이 거처라 했다.
그들은 남자들이 있는 곳을 부대사무실이라 불렀다.
그곳의 책임을 맡고 있는 한국인 젊은이가 꽤 인품과 도량이 넓은 인물로 기석이처럼 난리통에 오고갈데가 없이 방황하는 지성인들을 특히 관대히 받아들여 피신처를 확보해주고 그들의 가족까지도 따로 거처를 마련해서 부대용 식량까지 나누어주고있다했다.
그런 사정들은 미희도 그들 사이에 끼어서 하루 이틀을 함께 지내는 동안에 차차 알게된 사실이었지만 그러니까 미희는 기석의 부양가족 자격으로 그곳에 끼어들게 된 것이다.
그들은 같은 피난민이라해도 서로가 피해의식에 시달려온 사람들이어서 새식구가 하나더 끼어들어 그렇잖아도 달랑달랑 한 식량의 축을 낸다해서 냉대를 하거나 핀잔을 주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들은 마치 박해받던 시절의 기독교인처럼 서로가 서로를 동정하고 감싸는 한가족을이었다.
그들은 대장이라는 사람을 이구동성으로 생명의 은인으로 높이 받들고 찬양해 마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중 아무도 대장이란 사람을 만나본이가 없다는 것도 미희는 차츰 알게 되었다.
그런데 미희가 맨처음 그곳으로 가서 동네 장사꾼 여자와 피난가족의 대표격인 여자가 아웅다웅 싸우는 이유가 미스공이라는 처녀때문임을 알았고 그것은 미스공이 의상을 많이 지고도 갚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곧장 알게 되었거니와 그때 피난민 대표격 여자가『글쎄 미스공이 외상값을 영영 떼어먹느냐구요. 대장님만 오시면 한푼도 남기지 않고 싹 갚아준다는데 왜 이래요』하는 소리를 받아서 장사꾼 여자는 『그놈의 맨날 대장 타령、맨날 곧 온다는 대장이 왜 한번도 오지 않는담. 그나저나 미스공、그 말괄량이가 진짜 대장의 애인이긴 한겁니까?』나중말은 마침 미회를 데리고 그 자리에 당도한 기석을 보고 묻는 말이었다. 기석은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있더니 『그럼요』하고 짧게 대답했다.
기석은 생김새로 보아선 말하는 태도로 보아서도 절대 거짓 증언따위를 하는 사람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인지 장사꾼 여자도 조금은 누그러진 태도로 아무튼 의상을 빨리 갚아달란다고 꼭 전해달라면서 겨우 돌아갔다.
장사꾼 여자가 집 둘레를 한바퀴 돌아서 대문으로 나갈 만큼 시간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쿡쿡 웃는 소리가 들렸다. 방에 붙은 벽장을 톡톡 두드린 것은 벽장에 기대앉았던 할머니였다. 그러고보니 그는 벽장문이 열리지 못하게 그렇게 막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젠 나오구려』그러자 안에서 벽장문이 활짝 열리며 『아이 숨막혀서 혼났네』하고 툭 튀어나온 것은 군복을 입은 날씬한 미희또래 처녀였다.
그녀가 미스공임은 한눈에도 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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