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은 신약성경에서 매우 특별한 인물입니다.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여자에게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 루카 7,28)고 찬사받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요한은 철저하게 예수님을 준비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는 빛이 아니고 빛을 증언하러 온 사람이었고(요한 1,6~8),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는 이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는 묵묵히 자신의 소명을 실천하여 사람들에게 회개를 위한 세례를 주고 예수님께도 공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세례를 줍니다.
이사야에서 말하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는 예언이 이루어지도록 준비하는 이가 바로 세례자 요한입니다. 물론 제1독서와 복음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예수님의 세례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는 소리를 통해 예수님의 신원을 알려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 모든 것들을 준비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봅니다.
세례는 베드로의 깨달음처럼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을, 곧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을 공동체를 새롭게 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베드로 사도는 사도행전에서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유다인들이 혈통에 의해 하느님의 백성이 된 것이라면,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넘어서서 ‘하느님의 경외하고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더 이상 구원은 유다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이들을 위해 열려있습니다.
세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믿음을 고백하고 죄를 용서받으며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세례 안에서 우리는 죄와 단절된 삶을 살고,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한 생명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예식에서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예”라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이 응답은 세례 때에 한 번으로 족한 것은 아닙니다. 이 응답은 지속적으로 우리의 일상의 삶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세례 때의 응답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쉽게 하루에도 여러 차례, 아니 어쩌면 훨씬 더 자주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작은 것이던지 아니면 중요한 것이던지 이 선택은 우리의 삶을 드러내 줍니다. 이런 선택들이 모여서 우리의 하루가 되고 이것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에 우리는 믿음을, 복음을, 그리스도를 그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신앙은 삶과는 동떨어진 것이 될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세례 때의 응답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에 맞추어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세례 축일을 지내면서 자신의 세례를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처음 신앙생활을 하고자 했을 때의 열의와 기쁨과 감사함을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세례 때의 서약들은 지금 나의 생활 안에서 꾸준히 실천되어야 합니다. 아마도 신앙인들은 매일 매일 세례 때의 서약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는 구원을 향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깨끗이 씻고 또 씻으십시오. 하느님께는 인간의 회개와 구원보다 더 마음에 드시는 일이 없습니다. 성서에 기록된 모든 말씀들과 교회에 성취되는 모든 신비들은 사람의 구원을 위해 계시되고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이 태양처럼 빛나고 다른 사람에게 생명의 원천이 될 수 있도록 마련되었습니다.”(나지안즈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의 강론 중에서)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이태리 로마 성서대학(Pontificio Istituto Biblico) 성서학 석사학위를,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성서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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