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1독서에서 주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세 번이나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사무엘은 엘리에게 달려갑니다. 마침내 엘리는 사무엘을 부르는 것이 주님임을 알고 사무엘에게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라고 이릅니다. 세 번에 걸쳐 사무엘을 부르시는 하느님의 모습에서 ‘부르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하느님은 이렇듯 먼저 사람들을 부르는 모습으로 자주 나타납니다. 또한 이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사무엘의 응답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과 그에 대한 응답. 오늘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입니다.
요한복음 역시 부르심과 응답의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첫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은 다른 복음서와 비교해서 사뭇 다릅니다. 공관복음에서 예수님은 고기를 낚고 있는 이들을 만나고 그들을 제자로 부르십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에서 베드로보다 먼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그의 동생인 안드레아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제자들과 있다가 예수님을 보고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고 말합니다. 미사의 영성체 전에 사용하는 이 표현은 요한복음에서 보여주는 예수님을 아주 잘 표현합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에 대한 표현은 요한복음 안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암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간 제자들과 예수님의 대화는 동문서답 같기도 하지만 제자를 부르시는 이야기입니다. “무엇을 찾느냐?”는 예수님의 질문과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라는 제자들의 반문은 “와서 보아라”는 답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루를 묵습니다. 이런 체험 후에 안드레아는 형인 베드로를 찾아가서 말합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이 대화는 마치 그들이 찾는 것은 예수님이고 예수님과 함께 머물 때 비로소 찾을 수 있고, 그를 메시아로 고백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또 그들을 다른 이들과 비교해서 특징짓는 것은 ‘함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르심과 응답.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에서도 그렇듯, 당연히 부름은 응답을 필요로 합니다. 또 응답은 부름을 전제로 합니다. 이 둘은 서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르심에 대해 전해주는 성경의 말씀에서 하느님은 항상 먼저 사람들을 당신께로 부르십니다. 하느님은 먼저 말씀하시고 먼저 부르십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사람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통해서, 그들과 함께 당신의 구원 계획을 완성해 가십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부름받은 이의 능동적인 동참입니다. 사무엘의 모습에서, 그리고 안드레아와 베드로의 모습에서, 또 다른 제자들의 모습에서 응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우리에게 역시 성소(聖召)가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사제나 수도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넓은 의미에서 신앙인들 모두가 하느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이들이고, 세례를 통해 우리는 그 부름에 응답했습니다. 결국 모든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하느님과 함께 구원의 완성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계획을 실현해 가실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각자는 중요한 역할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런 일을 하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한 지체로,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아갈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실 것입니다.
오늘부터 일치주간이 시작됩니다. 일치주간은 특별히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또 그것을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시간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모든 이들이 반목과 분열을 넘어 자신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이태리 로마 성서대학(Pontificio Istituto Biblico) 성서학 석사학위를,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성서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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