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걸을 수 없던 것은 아니었다. 퇴행성 관절염 판정을 받은지 20여 년. 김용례(로사·91·인천 남촌동본당) 할머니는 오른쪽 무릎 뼈마디 사이로 칼바람이 스미는 듯한 통증 때문에 걷는 것이 어려워 ‘방바닥’ 생활을 한 지 오래다.
밥을 먹을 때나 화장실을 갈 때마다 엉금엉금 기어다닐 수밖에 없는 할머니는 고령으로 인해 마취 도중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수술을 포기했다.
앞으로 얼마나 살겠냐며 고개를 떨구는 할머니는 퇴행성 관절염 판정을 받기에 앞서 계단을 오르다 넘어져 왼쪽 무릎이 골절되기도 했다. 심지어 횡단보도를 건너다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온 차에 치인 적도 있지만, 홀로 지내온 할머니는 교통사고에 대응하기는 커녕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진통제에 의지해 지금껏 견뎌왔다.
슬하에 3남1녀를 둔 할머니라 해도 자녀들에게 쉽사리 손을 벌릴 수는 없었다. 첫째 아들은 막노동 현장에서 머리를 다쳐 뇌출혈 판정을 받았고, 둘째 아들은 정신질환을 앓다 오토바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으며, 셋째 아들은 간암에 걸려 아내와 이혼한 뒤 행방불명됐다. 그나마 장녀인 박순연(베네딕타·60)씨가 간간히 쌀과 밑반찬을 싸들고 할머니 댁을 오가며 허드렛일을 도맡아오긴 했지만, 최근 직장에서 사고로 어깨가 골절되는 바람에 병원신세를 지게 되면서 이마저도 어려워졌다.
할머니 댁을 찾아오던 사회복지사들도 집안의 악취가 심하다며 발길을 끊었다.
현재 할머니의 한 달 수입은 기초연금 20만 원. 자식들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에서마저 탈락했다. 자식들도 자신들의 상황이 좋지 않기는 매한가지라 할머니를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구를 뿐이다. 장녀 박순연씨가 장애등급을 신청하려고 애써보지만 당장 병원에 입원 중이라 애만 태우며 눈물을 훔친다.
할머니는 자세를 바꿀 때마다 무릎 통증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고통을 삼켰다.
“걸을 수 있는 건 바라지도 않아요. 당장 먹고 살 것만 있으면 돼요.”
할머니가 악재를 견뎌낼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묵주만 질끈 잡고 하느님께 매달렸기 때문이다. 까막눈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처녀 때부터 암송하던 기도문으로 묵주기도를 바쳐왔다. 그렇다고 정작 자신을 위해 기도한 적은 없다. 묵주기도 지향은 늘 자녀들 가정의 평화와 건강이었다.
겨울이 깊어가면서 극심한 무릎 통증에 신음하는 할머니는 어떻게 겨울을 날지 막막하지만, 이내 본인의 상황을 까맣게 잊은 채 다시 묵주알을 쥔다. 우렁찬 기도소리가 차가운 반지하 원룸에 메아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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