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은 대장의 애인으로 통하는 미스공은 이름이 양옥이고 간호원이라는 것밖에는 자신의 출신성분에 대해서는 끝내 아무에게도 밝힌 바가 없다.
미희보다는 한살이 많았는데 그녀는 양옥이라는 자기 이름을 무던히도 싫어했다. 어릴 적에는 아이들이 양웅양웅하고 놀려대더니 좀 커서는 이름자가 양양자 羊임을 알고는 매애매애하고 놀리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양옥이라는 이름 대신에 미스공이라 불리우는게 좋다고 했다. 서양식으로 미스를 붙이는 대신에 성 밑에 계집애 孃자를 붙이면 공양이 되기 때문에 그것도 어쩐지마뜩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피난민들은 누구나 미스공이라고 그녀를 불렀다. 조무라기 아이들까지도 미스공 언니、미스공 누나、하는 식이었다.
미스공은 구름 한점 없는 착공처럼 매일이 즐거워 보였다. 그녀는 피난생활의 우중충하고 내일을 알 수 없는 막장 일상에서는 잠시도 없어서는 안될 햇살같고 미풍같은 존재였다.
미스공은 똑같은 말을 해도 아주 웃음이 터져나오게 할 줄 아는 특별한 재간이 있었다. 다만 한가지 흠이라면 그렇게 재미있게 하는 이야기가 어디까지가 참말이고 어디부터 거짓말인지 통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미스공에게 여러가지 자질구레한 위로를 하루에도 숱하게 받고 있으면서도 어른들 중에는 차츰 그녀가 대장의 애인이라는 것도 믿을 수가 없다. 보사부 산하의 유력한 국가 의료기관의 간호원이라는 것도 새빨간 거짓말일지 모른다는 회의론이 조금씩 고개를 쳐들게 되었다.
『대장의 애인이라는 여자가 왜 대장을 만나지도 못하느냐구요. 대장이 서울에서 왔다가 미스공도 안 만나고 그냥 다시 갔다잖아요. 대장 이름만 그렇게 팔고 외상은 산더미로 져놓았는데 대장이 그냥 가버렸다니 이걸 어쩌죠?』피난가족 대표격인 순아엄마가 울상을 지었다.
그러자 언젠가 그녀를 벽장에다 숨겨준 할머니는 『순아엄마、미스공을 그렇게 말하면 죄받우. 미스공이 언제 저먹자구 외상졌우. 말이야 바른말로 미스공이 외상이라도 얻어온게 망정이지 그렇잖으면 우리는 안댁에서 퍼준 집간장밖엔 찍어먹을게 없지 않우』
『그건 그래요. 대장을 팔았으니 그놈의 지독한 예편네가 꽁치마리라도 외상을 주었지…』
『그거야 그렇지만 미스공이 너무 허튼 소리만 자꾸 늘어놓은 거 같아서 그러죠. 군복은 입고 신분증은 가지고 다닙디다만 언제 미스공이 시간 맞춰 출퇴근하는 거 보셨습니까. 아무 때나 나가서 아무 때나 들어오지 않는가 말예요. 어느 개인병원에서 간호원 보조같은 거나 좀 다녔던 거 아닐까요?』
『에게 아예 그런 소릴랑 마우. 우리집 양반이 저렇게 기동을 못하시지만 미스공이 어디서 구해오는지 주사약과 주사를 그렇게 놔주지 않는다면 아마 지금쯤은 어떻게 되셨을지 아무도모르지 않겠우. 주사도 그렇게 잘 놓지않습니까. 일일이 소독해서…누가 뭐래도 미스공은 우리 은인이우』
미회로 볼때는 양쪽 주장에 모두 일리가 있었다. 어쨌거나 미회에게도 미스공은 절대로 없어서는 안될 인물임이 또한 차례 입증될 날이 왔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